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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은 미묘하게”… K-콘텐츠에 대한 미국 한인 무비스타들의 이야기 [엄형준의 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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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06 17:53:01 수정 : 2023-10-13 2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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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 존 조, 정이삭, 저스틴 전, 부산국제영화제서 한자리
“소통 없던 미국 주류사회와 한국 영화로 대화의 장 열려
한인·한국 영화 독특한 소재 다루며 보편적 정서 자극해
예술은 인간의 마음 표현하는 것… AI가 대체할 수 없어"

“코리안-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의 작품이 공감받고,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공감받는 상황이 좋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 화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스티븐 연)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스티븐 연과 존 조, 정이삭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행사를 위해 방한한 존 조, 저스틴 전 감독,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6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행사를 위해 방한한 이들은 6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인, 그리고 ‘디아스포라’(Diaspora)로서 느끼는 소회를 풀어놨다. 디아스포라는 어떤 민족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민 2세대로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미국인인 동시에, 그 뿌리는 한국에 있는 디아스포라라고 볼 수 있다.

 

‘미나리’의 주연을 맡았고, TV시리즈 ‘워킹데드’에서 활약한 스티븐 연은 “한국 콘텐츠의 붐은 디아스포라로 사는 사람으로서 위안이 된다”면서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 프로그램을 봤는데, 서양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느낌이 있었고, 우리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할지 재정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제작된 ‘피지컬100’은 남녀 100명이 나와 체력과 정신력을 겨뤄 최종 1인의 승자를 가리는 예능 시리즈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로 스타덤에 오른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를 3년 만에 다시 봤다”면서 “제 조상이 있는 곳에서 한국분들과 다시 보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영화제 방문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이들은 재미한인들에게 불모지였던 미국 영화·드라마 업계를 개척했다.

 

정이삭 감독은 “우리 모두가 롤 모델 없이 열심히 작업한 것 같다”면서 “미국에서 코리안-아메리칸 부모님들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일 하지 말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개척했고, 그런 부분은 한국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이전 것들을 흉내 내지 않고, 독특한 한국적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전 세계인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는 정이삭 감독의 설명이다.

 

‘파친코’, ‘자모자야’를 연출하고, 할라우드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한 저스틴 전 감독은 “한국 영화의 예술에 대해 (요즘) 백인 동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게 너무 기쁘다”면서 “(미국) 주류 사회가 우리와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대화의 장이 열리고 있는 아름다운 시기”라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행사를 위해 방한한 존 조, 저스틴 전 감독,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6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연합뉴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그리고 코리안-아메리칸이 만든 ‘미나리’나 ‘파친코’ 같은 이야기가 주목받는 건 왜일까.

 

정이삭 감독은 “각각 약간은 다르지만 우리는 어떤 이민자와 같은 현실을 사는 것”이라며 “다른 도시로 이사하면서 공감받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삶 자체가 여정이고, 이민자이건 아니건 내용이 공감된다는 얘기 들었다”고 했다.

 

‘서치’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존 조는 “우리가 이민자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바깥으로 소통하면 듣는 사람들은 굉장히 흥미를 가진다. 드라마틱한 삶이지 않나”라고 했다.

 

한인 이민자의 ‘독특한 얘기’를 다뤘지만, 전 세계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정서’를 자극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미나리뿐만 아니라 요즘 K-콘텐츠가 세계적 관심을 끄는 이유로도 이해된다. 인종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 해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무언가를 담아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저스틴 전 감독은 “다른 소수자, 이민자들도 그들의 스토리텔링(이야기)을 한다”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범주에 들어가거나 섬처럼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두 감독은 이 보편적 정서를 특별하게 담아내는 한류 콘텐츠의 방식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정이삭 감독은 “저는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를 제삼자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거 같다”면서 “미국은 좀 더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나게 보여준다면, 한국은 미묘하게 드러낸다”고 말했다.

 

저스틴 전 감독은 “구조적 측면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플롯을 중시하고, 아주 큰 반전이 있거나 철저하게 짜인 구조를 중요하게 본다면, 동양이나 한국 영화는 감정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거 같다. 철학적 굴곡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영화는 감정적 레벨에서 공감할 수 있는 울림과 흡입력이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터넷 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과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미국배우노동조합은 AI 사용 반대와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기업의 공정한 수익 분배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얘기지만 우리나라 영화계 역시 이런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존 조는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인데, 자동화를 통해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고 AI 때문에 사람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영화를 본다고 하면 사람이 쓴 작품, 우리 인간의 경험에 대한 스토리텔링 하는 것 보고 싶다. 예술이라는 이 분야만큼은 기계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빼앗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조합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이 직업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분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그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낯선 땅이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저스틴 전 감독은 “한국은 수십년간 진보해 왔고 진화해왔다. 하지만 저희 부모 세대는 이민과 동시에 그 시대의 한국에 멈춰 있다"면서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한국에 오히려 더 많이 애정을 가지고 있고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계신 한국분들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한국을 떠나와 더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정이삭 감독은 “1살 때 제 목소리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가 있는데, 어머니가 거기서 ‘너는 한국사람이야’라고 계속 얘기한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사람이니까 잊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또 “상실이라는 게 있다. 한강을 지나다 보면 한국과 가까워지고 싶고, (오래전) 내 가족들도 한강을 바라봤겠구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부산=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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