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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불온서적 헌법 소원 냈다 3번 퇴출당한 군 법무관 14년 만에 명예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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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6 06:00:00 수정 : 2023-09-26 08: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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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복귀 판결’ 지영준 육군 법무관
MB시절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
파면·강제전역되자 14년간 소송 진행
14년만에 파기환송심 승소로 명예회복
명예전역·진급 심사 9월 말 전역예정

“참 오래 걸렸네요.”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냈다가 군에서 쫓겨난 지영준(사진) 육군 법무관(소령)이 14년에 걸친 소송을 마친 소감이다. 군의 파면 조치로 2009년 군복을 벗은 지씨는 최근까지도 국가를 상대로 ‘현역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서울고법 행정9-3부(재판장 신용호)는 지난달 25일 파기환송심에서 “실질적인 직무 수행의 기회를 상실한 기간 동안 계급별 연령정년이 연장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올해 3월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다. 육군이 파기환송심에 대한 재상고를 포기하며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지씨는 현역 시절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장병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군에서 쫓겨났다. 당시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23권은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시중에서 널리 읽힌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군은 지씨와 동료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아 군기와 단결을 저해했다”며 징계했다. 가장 선임자였던 지씨는 파면됐다.

그는 이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법원은 “(해당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며 파면 처분을 취소시켰다. 그러나 군은 지씨가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후 “현역 복무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 2012년 1월 18일 강제 전역을 명령했다. 그가 전역 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해 바로잡기까지 6년이 걸렸다. 2018년 대법원은 “정당한 징계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군의 정직 처분과 전역 명령 모두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해 8월 파기환송심에서 ‘현역 법무관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자 군은 그가 소령으로서 계급정년인 45세에 도달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전역 명령을 내렸다. 군의 파면 및 전역 결정으로 제대로 복무하지 못해 진급심사도 받을 기회가 없었음에도 “정년이 지났으니 나가라”고 한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법원은 계급별 연령정년이 도래한 것에 대해 “당사자의 귀책 없이 초래된 비정상적 상황”이라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를 상대로 싸운 14년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파면 조치로 군에서 나왔을 때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조차 막막했다고 한다.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복무기간을 채우지 못한 데다 파면된 공무원은 3년간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 고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씨는 “동기들이 매달 자기들 월급에서 10만원씩 걷어 나한테 보내줬다”며 “자기들이 전역할 때 되니 그동안 모아둔 회비 3000만원을 주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15일 인사명령을 통해 그의 전역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어느덧 50세가 훌쩍 넘은 나이였다. 그는 ‘육군 소령으로 돌아가기엔 세월이 너무나도 흘렀고 후배들의 자리를 뺏고 싶지 않다’라는 의사를 군에 전달했다. 이에 육군은 지씨에 대해 명예진급 및 명예전역 심의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가 최종적으로 승인하면 그는 중령으로 진급해 오는 30일 스스로 군복을 벗게 된다. 그는 “오랫동안 군에서 복무하고 싶었고 주인의식과 책임감으로 헌법소원을 냈다”며 “오래 걸렸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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