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 않은 ‘국뽕’… 인간승리의 서사 함께 녹여
강제규 감독 “그분들 삶, 우리 돌아보는 계기될 것”

1947년. 일제 강점기가 끝났지만, 미 군정의 통치하에 국제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서윤복은 그해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 처음 출전해 2시간25분3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이 대회는 광복 후 ‘KOREA’와 태극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참가해 우승한 첫 국제대회로 우리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대에는 큰 사건이었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의 위업에 가려, 오늘날 서윤복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또 한명의 마라토너로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 3위를 차지한 남승룡을 기억하는 이는 더욱 적다.
강제규 감독의 8년 만의 연출작인 ‘1947: 보스톤’은 잊혀가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이자,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낸 뜨거운 승리의 드라마를 재조명한다.

영화는 손기정(하정우 분)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부터 세 사람의 만남, 그리고 보스턴 마라톤 우승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혼돈의 역사처럼 영화 전반부는 다소 어수선하다. 다양한 인물이 출연해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세 사람의 주역을 제외하곤, 마치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려 나난 것처럼, 대부분의 역할이 미약하다. 다행히 영화는 후반부의 보스턴을 향한 여정에 오르며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겪었던 국가 없는 설움과 역경의 극복은 필연적으로 애국심 고취, 소위 말하는 ‘국뽕’으로 귀결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그들이 만든 드라마는 결코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감독이 그리는 서윤복(임시완 분)의 승리는 대한민국의 승리인 동시에, 서윤복과 손기정, 남승룡(배성우 분)의 인간 승리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지난 11일 영화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무악재와 미국 보스턴의 '하트 브레이커' 언덕을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꼽았다. 강 감독은 “이 두 개의 연결선이 서윤복의 드라마(를 보여준다)”라면서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과연 주인공이 어떤 아픔과 마음가짐으로 달리는가. 어린 시절 엄마 때문에 서낭당 밥을 훔쳐먹던 (장소인) 무악재 고개가 하트 브레이커 언덕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강 감독의 전작 중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다. 강 감독은 “제가 만든 영화 중 지난 시간을 주로 다룬 영화들이 많더라”면서 “미래는 할리우드 분들이 너무 많이 찍었다. 미래를 표현한다는 건 무얼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는 일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고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라톤에 대한 관심은 강 감독이 대학 시절 보았던, 파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 ‘불의 전차’에서 시작됐다.
역사가 더는 고교생의 필수 교과목도 아닌 세상에서 역사와 개인의 서사를 결합한 강제규식 영화는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쟁쟁한 경쟁작들과 함께 추석시즌인 오는 27일 개봉한다.
강 감독은 “할 얘기도 많은데 굳이 과거 얘기를 볼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리 역사 속에 담긴 소중한 얘기,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 많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정말 잘 살아가고 있나 바른길로 가고 있나 스스로 점검해 보는 그런 시간을 통해 분명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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