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승차공유 서비스·택시산업 충돌
디지털 플랫폼으로 의견 수렴해 조율
핀란드, 인간 중심 AI프로그램 만들어
법률·사회복지 등 공공행정 분야 접목
국내서도 입법 과정 적극 활용 움직임
국회사무처, 대화형 플랫폼 구축 나서
“인공지능(AI)은 위기보다 기회가 많은 분야다. 어느 정도의 교육만 선행된다면 AI는 정치나 민주주의에 많은 기회를 가져올 것이다.”
독일 자유민주당(FDP)의 디지털 정책 대변인 막시밀리안 푼케카이저 독일 하원의원은 지난 6월2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짜뉴스, 딥페이크 등을 보면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더 많은 위험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기술 자체에는 악의가 없다. 과도한 규제보다는 리터러시(문해력)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지만, 민주주의에 기여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AI가 윤리적으로 사용된다는 전제하에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규모 숙의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합의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은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다양한 공공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국민 편의를 제공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도 국회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 지원 등에 AI 도입을 추진해 AI를 민주주의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숙의 질 높이고, 갈등 해결까지
AI를 통해 그동안 소규모 집단에서 작동해오던 숙의민주주의(공공 의제에 관한 토론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절차)를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AI 윤리 연구소 방문 연구원인 헬렌 란데모어 미국 예일대 정치학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연결하고 양질의 숙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AI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숙의민주주의 과정에서 AI의 번역 기능을 통해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도 있고, 사실 확인이나 데이터 처리를 하는 데에도 AI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AI가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은 사람들 사이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라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 AI ‘앨리스’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란데모어 교수는 “앨리스는 현재 시간을 지키고 발언권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생산적인 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대만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와 택시 산업의 갈등을 풀어내는 데 AI를 활용한 사례도 존재한다. 우버 택시 도입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디지털 플랫폼 ‘폴리스’(Pol.is)를 통해 수렴한 것이다. 폴리스는 머신 러닝을 사용해 특정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분포해 있고, 자신의 의견은 그중 어디에 있는지를 시각화해 보여준다. 대만 정부는 이를 활용해 우버기업, 우버기사, 택시업계, 일반 국민 등의 서로 다른 주장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뤘다.
◆인간 중심 AI로 공공행정 개선
여러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공공서비스와 행정에 AI 활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AI를 공공행정 분야에 잘 접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7년 유럽연합(EU) 국가 중 처음으로 국가 AI 전략을 수립한 핀란드 정부는 산나 마린 전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20년 초부터 국가 AI 프로그램인 ‘오로라 AI’ 개발에 속도를 내 지난해 개발을 완료했다. 인간 중심적 AI로 공공행정의 발전 속도를 높여 국민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오로라 AI의 개발 목적이다.
오로라 AI 개발을 주도한 핀란드 재정부의 공공 분야 ICT 선임 전문가인 니코 루오스테차리는 지난 6월8일 헬싱키 재정부 건물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로라 AI는 오픈소스로 모두에게 공유돼 국가 기관이나 단체들이 AI 서비스를 손쉽게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라며 “단순히 기술적 측면이 아닌 어떻게 하면 정부가 AI 기술을 활용해 국가를 가장 잘 운영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포함해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AI 거버넌스 발전에 있어 핀란드가 특히 중시하는 것 중 하나는 정책 연속성이다. 루오스테차리는 “공공 AI 개발에 있어 핀란드의 장점 중 하나는 정부가 바뀌어도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달리기 경주에서 주자가 바뀌어도 배턴을 넘겨받아 계속 달리는 것처럼 핀란드가 AI 정책을 시행하는 방식은 정치적 흔들림 없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당제 국가에서는 정부가 변하면 정책도 많은 부침을 겪는다고 들었는데 다당제가 활성화된 핀란드에서는 그럴 염려 없이 디지털 정책을 긴 호흡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운영 초기 단계인 오로라 AI의 활용처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6월 말부터는 교정시설에도 오로라 AI를 기반으로 한 AI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일부 교도소에서의 시범 서비스를 거쳐 핀란드 내 모든 교도소로 확장된 해당 서비스는 수감자들과 교도관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오로라 AI를 활용하고 있다. 또 법률,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담과 지원 서비스가 오로라 AI에 기반을 둬 제공된다.
◆정책에 활용도…韓 국회도 나섰다
전문가들은 정책 마련에 AI를 활용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거버넌스 전문가인 안스가 코네는 지난 6월19일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AI와 윤리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 세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AI 언어 모델을 사용해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지 온라인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 입안자들이 집중해야 할 주요 이슈를 파악하는 데 AI가 도움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코네는 AI의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전제로 “AI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활용하면 정책의 성공 여부를 더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입법 과정에 AI를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최근 생성형 AI 플랫폼 구축 사업도 첫발을 뗐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보조하는 생성형 AI 기반 대화형 플랫폼 구축 사업에 착수했다. 입법 과정에 필요한 각종 법령과 판례, 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 플랫폼을 만들어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돕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국회도서관도 AI 활용에 적극적이다. 국회도서관이 2019년부터 시작한 AI 의정 분석 서비스 ‘아르고스’는 국회도서관이 보유한 정보와 공공기관·민간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통해 수행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의정 활동 지원 시스템이다. 뉴스와 소셜 데이터를 하루 평균 30만 건 이상 수집·분석해 국민의 관심사와 정책 이슈를 알기 쉽게 정리해 제공함으로써 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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