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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국 민족주의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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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03 23:32:55 수정 : 2023-09-03 23: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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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문제·영유권 분쟁 등서
논리와 이성 아닌 감정적 대응
권리 침해당한 주변국 항의엔
“이성적 접근” 훈계에 기가 차

“외출할 때는 가급적 언행을 삼가고, 불필요하게 큰소리로 일본어로 말하지 말라.”

일본이 지난달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후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주중 일본대사관은 중국 내 자국민에 “만일의 사태를 배제할 수 없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며 이 같은 당부를 했다.

중국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단순한 외교적 비판을 넘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일본산 화장품 업체 ‘불매 리스트’가 공유되는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독려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일본 공공시설 등이 중국에서 걸려 온 항의전화로 업무를 못할 정도였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이뿐 아니다. 장쑤성 일본인학교에는 계란이 날아 들어왔고, 상하이 일본인학교에는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중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이나 일본 공관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문제없다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영향에 대해 평가가 나뉘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라면 이를 비판하고 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대응 방식에서 중국 특유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기반한 물리력 등이 동원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반한 감정이 고조됐을 때 중국에 있는 한국 교민들이 택시를 타거나 돌아다니기 두려웠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 이후 중국 내 반한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교민들은 사드 사태 때의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지금 중국의 일본인들이 겪을 두려움은 사드 사태 때 한국 교민들의 마음과 비슷할 듯싶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중국의 이 같은 행태는 주변 국가들에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은 중화 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중화(中華)주의에 기반해 14억 인구, 세계 두 번째 경제력 등을 앞세워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일 때가 적지 않다. 논리와 이성으로 상대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에 중국의 비이성적 행태만 부각되니 본질이 가려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번에는 이를 의식했는지 관영매체들이 자제를 요청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일본은 중국에서 일본인의 안전 문제를 과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라며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악용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도가 어떻든 감정적인 대응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불리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민족주의를 앞세워 주변 국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또 발생했다. 영토 문제다.

중국은 최근 주변국과 국경·영유권 분쟁을 겪는 지역을 모두 자국 영토로 표시한 ‘2023 표준지도’를 공개했다. 인도와 국경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카슈미르 등의 지역과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를 자국 영토로 버젓이 표시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절반씩 관할하는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 섬도 전체를 중국 영토로 표기했다.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는 남중국해에 대해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 영역이 자국 영해라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지금까지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은 그럴 때마다 “주변국들은 객관적·이성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역외 세력의 남중국해 평화 파괴 시도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까지 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물리력까지 동원하는 중국은 자기가 침해한 권리에 항의하는 국가엔 ‘이성적으로 접근하라’고 훈계한다. 중국의 이런 이중적인 행태에 기가 찰 뿐이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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