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관동·關東) 대지진 당시 무차별적으로 일어난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지진 발생 100주년이 되는 1일 개봉했다.
31일 영화 홈페이지에 따르면 후쿠다무라 사건은 관동 대지진이 발생으로 부터 5일 뒤인 9월 6일 지바현 후쿠다 마을(현 노다사)에서 일어났다.
지바현 후쿠다 마을에 시코쿠 지방 가가와현에서 약을 팔러온 온 행상 15명 중 아이와 임신부를 포함한 9명이 자경단을 비롯한 마을 주민 100여 명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주민들이 이들의 시코쿠 지역 사투리를 조선말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조선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경단은 이들에게 어려운 일본 단어 발음을 시켜며 그들을 조선인으로 몰고 갔다. 촌장 등과 일부 주민들이 “이들은 일본인이다”라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성난 군중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를 순사가 본서에 문의하러 간 사이, 마을 주민들은 이들을 구타 및 폭행했고, 살해해 시신을 강에 유기했다. 사건 이후 자경단원 8명이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다이쇼 천황이 사망하며 사면됐다.
모리 타츠야 감독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후쿠다촌 사건’을 만들었다. 제작사 측은 영화에 대해 “여러 정보에 혹해 생존의 불안과 공포가 확산해 군중은 폭주한다”며 “이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후쿠다촌 사건은 간토 대지진 당시 약 60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학살된 간토 대지진 학살 사건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지진 후 일본에는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속출했다. 추정되는 사망자 및 실종자는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 갑작스러운 재해로 치안까지 무너져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물에 독을 풀었다’, ‘불을 질렀다’, ‘조선인들이 지진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등의 근거 없는 낭설이 떠돌기도 했다. 일본 언론매체들은 이를 사실인 것처럼 여과없이 전파했다.
이에 각지 자경단은 흉기로 무장한 채 곳곳을 돌며 조선인들을 색출해 학살했다. 조선인을 식별하기 위해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 문장을 말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당시 조선인으로 오인돼 목숨을 잃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모리 타츠야 감독은 옴 진리교를 밀착 취재한 영화 ‘A(1998)’,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을 취재한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삶을 담은 ‘나는 신문기자다(2019)’ 등을 연출했다.
모리 타츠야 감독은 “후쿠다무라 사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눈을 돌려왔다”며 “다수파는 소수파를 표적으로 삼고, 악의 없이 학살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NHK와 인터뷰에서 공포와 불안으로 인간이 잔인한 집단이 될 위험성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역사와 실수를 연구하면서 사람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