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30년 전, 필자는 혼자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스페인의 국립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을 접했다. 피카소의 그림《게르니카》이다. 그림의 크기에 압도당했을뿐 아니라 무채색의 거친 색감과 사물을 독특한 구도로 추상적으로 표현한 방식에 매료됐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옆에서 스페인 아빠가 돌이 막 지난 아들을 목말 태우고 이 그림에 대해 부지런히 설명하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후 스페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의 예술적인 자부심이 남다름을 알게 됐다. 어린 시절 부터 그들의 삶 속에 예술이 깊숙이 자리하기 때문이었다.
피카소는 작품 숫자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평생 회화 등 5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다작 못지않게 그의 작품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알제의 여인들’(1955년 작)이 1억7937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2409억 원에 낙찰됐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인 김환기의 '우주'(1971년 작)는 132억 원에 팔렸다.
피카소는 세계 미술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로 인해 20세기 입체파라는 미술양식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예술적인 흐름은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기존 미술의 정해진 틀을 벗어난 창의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추구했고, 91세로 타계할 때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 시도를 멈추지 않은 거장이었다.

피카소의 심오한 예술세계를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평생 예술가로서 지향했던 삶의 태도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겠다. “나는 라파엘로(이탈리아의 화가)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그가 했던 말이었다. 평생 아이의 순수함과 감성을 잃지 않은 예술가였다.
올해는 그가 서거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스페인 전역의 피카소의 삶과 관련된 말라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라코루냐, 빌바오 등의 주요 박물관에서 16개의 각종 전시회가 열린다. 피카소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 사람의 위대한 거장은 죽어서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피카소와 같은 천재 예술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적인 토양이 핵심이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키워왔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2022년 기준으로 스페인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은 49개로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풍성한 전통문화 토대 위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제2, 제3의 피카소의 꿈을 키워가는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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