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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마지막 재일 광복군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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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15 01:55:15 수정 : 2023-08-15 01:55:13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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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 우여곡절 끝에 광복군이 창설됐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21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이듬해인 1941년 12월 8일에는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미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은 일본이 미국·중국과 전쟁을 벌일 때 함께 대일투쟁을 전개해 독립을 쟁취하려는 전략의 하나였다.

이런 광복군 활동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대원을 파견해 영국군과 공동작전을 편 것과,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한 것을 들 수 있다. 대원들이 일본인과 외모가 비슷하고 일본어를 잘 구사할 뿐 아니라 한반도 사정에 밝아 적임이라고 본 것이다. 1944년 초 영국군에 배치된 대원들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던 미얀마 접경의 험준한 산악지대인 임팔(Impal) 전선에 투입됐다. 이곳에서 대원들은 대적방송·전단 제작과 살포·포로 심문 등의 심리전 활동을 벌였다. 이후 미얀마 수도 랑군 탈환 작전을 비롯해 일본군과의 전투에도 참가했다.

국내 진공작전에 나선 광복군 대원들은 1945년 5월 21일부터 중국 시안(西安) 근교의 비밀기지에서 OSS 교관으로부터 사격, 폭파, 침투, 독도법, 무전기 사용법 등 특수훈련을 받았다. 8월 20일까지 4∼5명씩 공작반 8개조를 편성한 뒤 낙하산이나 잠수정으로 한반도로 침투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그러나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일본의 항복 소식이 들려왔다. 김구 주석은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없을 것으로 예견하고 땅을 치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제 일본 내 마지막 생존 독립유공자인 오성규 지사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도 OSS 훈련에 참여했던 광복군 출신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광복군을 뿌리로 삼고 있으나 해방 후 미군정이 설립한 국방경비대를 토대로 창군하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해 지금까지도 친일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용공(容共) 논란도 작지 않다. ‘누구’를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냐를 두고도 그렇다. 조국 땅을 밟은 오 지사에게는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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