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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안전 해치는 무차별 범죄
‘괴물’ 막을 지속적인 대책 시급
내부 분열, 사회 양극화 조장한
‘정치의 실패’ 가장 큰 책임 져야

출근길 잠실역 근처에 비상 깜빡이를 켠 경찰차가 서 있었다. 지난 3일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뒤 등장한 풍경이다. 유사한 사건을 예고한 글들이 속출하면서 장갑차와 경찰특공대원이 배치된 곳도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인 데다 신림동 사건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진 모방범죄 성향이 짙다는 점에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말대로 이런 식의 무차별적 범죄를 막기는 쉽지 않다. 특정한 동기 없이 막연한 분노나 정신질환 등으로 범죄가 촉발되기 때문에 사전 탐지, 예방이 어렵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플랫폼뿐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분노 게이지’가 높은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 또 어떤 유형의 분노 범죄가 나타날지 걱정이다.

황정미 편집인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서현역 사건을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다. 정신질환자의 일탈 범죄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국민 생명은 물론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사실상 테러행위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특단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윤 청장은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히면서 “전문가들은 공동체 사회 붕괴를 근본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는 만큼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심층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여론 확산에 여당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엄벌주의를 들고 나왔다. 야당은 잇단 강력 범죄를 막지 못한 정부 쪽에 책임을 떠민다.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그랬듯 마치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 듯 말이다. 하지만 혐오와 극단적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정치권 행태를 보노라면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주범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증오범죄,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는 배경에 사회 양극화가 꼽히는데 정치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윤석열정부·여당과 이재명 민주당은 넓은 전선에서 대치 중이다. 최근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 LH 철근 누락 사태를 놓고 정부 여당은 전임 문재인정부 탓하기에 바쁘고, 민주당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부풀리는 데 열심이다. 국제 망신을 산 세계잼버리대회까지도 누구 책임이 더 큰지 따지는 정쟁거리가 됐다. 정쟁 대상이 되는 순간 해결해야 할 문제, 누군가 져야 할 진짜 책임은 사라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 혐오만 남는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상대 후보자가 싫어 특정 후보를 찍는 ‘비토성 투표’ 결과를 목격했다. 정당 지지 성향을 분석해 보니 ‘우리 편이 좋다’(20%대)보다 ‘상대편이 싫다’(60%대)는 부정적 정서가 훨씬 강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2023년 1월13∼16일, 한국리서치) 7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상대 당 지지자들에 비호감을 느끼고 상대 당 정책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생각한다는 미국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2023년 4월, Survey Center on American Life)

유독 두 나라의 정치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건 승자독식 구조 탓이 크다. 한 표라도 더 얻는 후보가 정부·의회 권력을 독차지하고, 그래서 두 거대 정당이 상대 당 비판을 동력 삼아 ‘적대적 공존’을 지속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혐오·배제의 정치문화를 바꾸기 위해 20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까지 열어 선거제 개편을 논의했지만 빈손으로 끝났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두 정당이 기득권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괴물’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지점, 관리·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자란다. 공동체 안녕을 깨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런 사각지대를 메꾸기 위해 부산을 떨지만 구멍은 또 다른 곳에서 뻥 뚫리고 만다. 나는 정치의 실패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보다 누군가에 분노하는 데 우리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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