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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는 멀고 내진율도 저조… 지진 나면 넋 놓고 당할 ‘판’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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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7-25 06:00:00 수정 : 2023-07-24 18: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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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지진 2023년 두 달 새 232회
더 큰 규모 단층대 존재할 가능성
한반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 아냐

대피소 안내 표지판 찾기 힘들고
해일 대피 장소는 해변에서 멀어
관리 주체 지자체는 안일한 태도

학생·주민 대피교육·훈련 흐지부지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율도 15%뿐

“학교 등 밀집시설 훈련 의무화를
20년 이상 장기 마스터 플랜 시급”

#1. “벌써 3년 넘게 여기로 출퇴근하고 있는데, 진짜 처음 봤어요.” 지난 20일 서울 명동의 한 거리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37)씨는 인근 지진옥외대피소의 위치를 알고 있었냐고 묻자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명동역 근처에선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옥외대피소와 실내구호소(교회) 등 2곳이 지진 발생시 대피시설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역 주위와 대로변 등에선 이들 대피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도 초등학교 옥외대피소는 방학을 맞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당분간은 제기능을 하지 못 한다.

 

#2. 올해 4∼6월 약 두 달 간 200회가 넘는 지진이 잇따른 강원 동해안의 중심 도시 강릉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시가 지정·운영하는 지진·해일 긴급대피소인 하시동2리 마을회관은 가장 가까운 염전해변에서 2.3㎞나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동해안에서는 지진·해일 대피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아예 없는 해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안내 표지판과 실제 위치가 다른 경우도 파악됐다.

 

재난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특히 지진, 해일은 피해 규모가 여타 재해와는 차원이 다른 재난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새 크고 작은 지진이 관측되며 더 이상 한반도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평소 대비 실태가 중요하지만 지진·해일 대피소 안내나 관리 문제부터 저조한 건축물 내진설계비율, 형식적인 교육·훈련까지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도 ‘위험지대’… 대비는 ‘안일’

 

24일 기상청 날씨누리에 따르면 디지털 관측을 시작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한반도에서 매년 평균 70.6회(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관측됐다. 아날로그 관측을 했던 1978년∼1998년(매년 평균 19.1회)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한반도에서 관측 이래 가장 규모가 컸던 경주 지진(규모 5.8)과 포항 지진(규모 5.4)이 발생한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252회, 223회의 규모 2.0 이상 지진이 관측된 바 있다. 당시 인근의 원자력발전소들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인명·재산 피해가 컸다. 사상 최초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24일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작은 글씨로 ‘지진옥외대피장소’라고 적혀 있다. 지진옥외대피소로 지정된 이 학교 운동장은 공사가 이어지고 있어 당장은 이용할 수 없다. 최상수 기자

올해 들어선 강원 동해 일대에서 지진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발간한 ‘동해(강원) 연속지진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5월15일 동해 동북동 약 60㎞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4.5 지진을 비롯해 4월23일∼6월20일에 총 232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연구원은 지진이 난 지역에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큰 규모의 단층대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정밀한 해저물리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제든 지진이 재난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지진 발생시 가장 먼저 찾게 될 대피소 관리·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관리 주체인 각 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함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이나 휴가철 인파가 몰리는 해변의 경우 위험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신보금 강릉시의원은 “동해 앞바다에서 규모 6.5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해일을 동반하는데, 육지까지 10분도 채 안 돼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런데도 일부 대피소는 해안가와 너무 먼 곳에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여전히 미흡한 수준인 건축물 내진설계율도 문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건축물의 내진율은 15.3%에 그쳤다. 허 의원은 “2017년 12월 개정된 현행 내진설계 기준을 따를 의무가 없는 기존 건축물이 대다수인데, 별도의 소급 적용 규정은 없는 상황”이라며 국토부에 유인책 강화 등을 주문했다.

 

서울 중구의 지진옥외대피장소로 지정된 한 초등학교가 여름방학을 맞아 공사가 한창인 모습. 24일 해당 학교 정문에 ‘공사가 진행 중이니 후문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최상수 기자

◆형식적인 교육·훈련… “의무화 필요”

 

지진 관련 교육은 어떨까. 전국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는 ‘학교안전교육 실시 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라 △재난안전 △생활안전 △교통안전 등 7대 분야의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재난안전교육은 연간 6차시 이상 하도록 돼있는데, 여기엔 지진 같은 자연재난은 물론 화재, 폭발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교육 내용은 각급 학교 재량이다. 6차시 중에 지진 관련 교육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이와 별개로 매년 초등학교·특수학교를 대상으로 지진과 화재 대응 상황을 교육하는 ‘어린이 재난안전훈련’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참여학교는 지난해 175곳, 올해 200여곳으로 전체 초등학교(6000여개)의 3% 수준이다. 이 밖에 전국에 있는 학생안전체험관 등에 지진체험실이 있어 지진 대피 훈련 체험이 가능하지만, 의무교육이 아닌 만큼 지역·상황별로 체험빈도 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 지자체가 시행하는 지역 주민 대상 지진 대피 교육·훈련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다. 강릉시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해안가 마을을 지정해서 주민들과 지진·해일 대피소까지 찾아가는 훈련을 했었으나,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추진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의 지진 대피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교철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학교 같은 밀집 시설은 더더욱 대피 훈련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2016년과 2017년에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당시 학생들이 대피하는 장면이 방송 등에 나왔었는데, 그냥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았나. 자칫 외벽이 무너지면서 잔해에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기본적인 대피법부터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까지, 연간 한 번 정도는 꼭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강원 강릉시 연곡면 영진해변의 전신주에 인근 지진·해일대피소인 주문진성당까지 거리가 2㎞라는 안내표지판이 걸려 있다. 강릉=배상철 기자

◆“장기플랜 세워야하는데 연구 축소”

 

재난대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여러 자연재해 중에서도 특히 지진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진방재관리과를 별도로 두고 있고, 지진안전누리집과 국민재난안전포털 등을 통해 지진 발생시 행동요령을 안내하는 등 온라인 홍보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진의 경우 피해가 한 번 발생했다 하면 워낙 크게 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학계 등에선 장기적인 플랜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지진 대비 실태 중에 가장 부족한건 ‘마스터 플랜’”이라며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이후에 관련 연구는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진 대비라는 건 5년, 10년 단위가 아니라 20년, 30년을 두고 플랜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손 교수는 “큰 지진이 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받았다가 언제든 사그라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며 “앞으로 지진이 좀 잠잠하면 다시 (연구) 예산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데, 그랬다간 큰 지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에 대비하려면 권역별 위험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내진설계를 할 수 있도록 ‘국가지진위험지도’를 그리는 게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지진 연구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지금까진 전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내진설계를 해왔다”며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에야 지진 유발 단층을 찾는 조사를 전국 권역별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홍 교수는 “연구를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진행해야 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니 벌써부터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주영·구윤모·이규희·김유나 기자, 강릉=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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