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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숙제·인터넷 강의 봐도… “학교서 뭐라 안하던데요” [심층기획-잠든 학생, 무력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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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7-10 06:00:00 수정 : 2023-07-10 17: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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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교실에서 잠든 학생들

25명 중 수업 듣는 학생 10명
학년 올라갈수록 ‘비참여’ 심각
학생이 ‘딴공부’ 양해 구하고
교사가 허락하는 경우도 많아

학교수업으로 대입준비 어려워
내신점수 안 나오면 자퇴 선택도
학원에 매달리는 악순환 이어져
“맞춤교육·교사권한 강화 필요성”

“반에서 수업 듣는 아이요? 5∼6명 정도일걸요.”

 

서울 한 고교 3학년 이모(18)양은 본인을 ‘정시러’라고 소개했다. 정시,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올인’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양의 생활은 수능에 맞춰져 있다. 학교 수업은 안 들은 지 오래다. 이양은 학기 초 몇몇 교사를 찾아가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게 해 달라”는 양해를 구했다. 평소 성적이 좋았던 이양의 부탁을 대부분의 교사는 수락했다. 이양은 허락받은 시간엔 모의고사 문제를 풀거나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강의를 보고, 다른 공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교사의 시간엔 눈치껏 잠을 잔다. 이양의 ‘진짜’ 수업은 하교 후 학원에서 시작된다. 이양은 “학교도 대입이 목표라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실이 잠들어 있다. 학생의 외면에 교사는 의욕을 잃고, 수업 질이 떨어지면서 학생은 또다시 사교육을 찾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윤석열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개혁의 핵심은 ‘잠든 교실을 깨우는 것’이지만, 한국 고교생 상당수에게 학교 수업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자는 학생, 깨우지 않는 교사

 

9일 세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함께 고교 교사 872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일반고의 경우 응답 교사의 42%가 10∼30% 미만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고 답했다. 30∼50% 미만은 13.1%, 50% 이상도 4.5%에 달했다.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은 10∼30% 미만 37.1%, 30∼50% 미만 12.3%, 50% 이상은 4.9%였다. 한 반 학생이 25명이라고 가정하면 3∼7명은 잠을 자고, 또 다른 3∼7명은 다른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은 10명 남짓한 상황인 셈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 건대부고 박모 교사는 “수업 시간에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학생이 많고, 고3은 90∼100%가 안 듣는다”고 했다.

 

수업을 안 듣는 학생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학업에 관심 많은’ 학생조차 수업을 외면하는 것이 문제다. 수업 참여율이 떨어지는 데는 수능 영향력이 큰 대입 구조가 한몫한다. 앞서 문재인정부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서울 주요 대학 16곳의 정시 비중이 20%대에서 40% 이상으로 높아졌다. 상위권에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수업보다는 수능 준비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업 시간에 수능 공부 허락받는 법’이 공유되는 이유다. 학교 수업으로는 대입 대비가 안 된다고 생각해 학원에 더 매달리고, 학교는 뒷전이 되는 것이다. 올해 서울 주요대 중 한 곳에 입학한 황모(19)씨는 “체육 시간은 운동이라도 해 좋았지만 그 외엔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며 “학교 수업은 수능과 따로 논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며 의욕이 꺾인다. 고교 교사 장모(45)씨는 “학원 숙제하는 학생을 혼냈더니 학부모가 ‘대학 못 가면 책임지냐’고 항의한 적 있다”며 “‘나 믿고 학원 그만두라’고 할 수 없으니 수업 안 듣는 아이에게 뭐라 하지 못하고 그냥 모르는 척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0)씨는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 문제를 선생님께 물어봤다가 ‘학원 가서 물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학원에서 선행 학습한 애들이 많으니 학교에선 개념 설명도 잘 안 해줬다”며 “선생님들도 ‘중요한 건 수능’이라며 수업 안 듣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위권 학생 중 1학년 내신 점수가 안 나오면 자퇴를 하는 경우도 많다. 2·3학년 때 만회가 힘들다고 보고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다. 실제 수능 응시자 중 검정고시 출신 비율은 2014학년도 2.2%에서 2017학년도 1.9%로 떨어진 뒤 2020학년도(2.3%)부터 올라 2023학년도에는 3.1%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입시업계에서는 최근의 정시 확대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교육과 대입 괴리부터 줄여야

 

교육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취임 후 줄곧 “잠든 교실을 깨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은 크게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교과서, 고교학점제(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제도) 등을 통한 맞춤형 교육’과 ‘교사 근무 여건 개선’으로 요약된다. 하위권은 수업이 어려워서, 상위권은 수준에 안 맞는다고 느껴서 외면하는 만큼 2025년부터 개별학습이 용이한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해 수준별 교육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도 맞춤형 교육과 교사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주호 한양대 교수(교육학)는 “공교육의 문제는 표준화 교육에 치중해 다양한 요구를 가진 학생의 개인차를 무시한다는 것”이라며 “개별화한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교육학)도 “공교육은 맞춤형 교육이 어려워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메워 가는 상황”이라며 “학교·교사에 대한 기대, 존중심이 없어진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다만 교육계에선 입시제도 개편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교육과 대입이 별개인 현상을 바꾸지 않는 한 공교육 경쟁력 강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일보와 교총의 조사에서도 교사들은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교원 생활지도권 강화’(53.8%), ‘개별화 교육이 가능한 학급당 학생 수 감축’(46.8%) 다음으로 ‘입시제도 개선’(36.9%)을 꼽았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과 좋은교사운동이 지난해 9월 일반고 교사 261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고3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원인으로 ‘수업을 듣지 않아도 어려움 없는 입시제도’(93.5%)가 꼽혔다.

 

특히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데, 대입 개편이 없다면 쉬운 과목만 선택하는 등 공교육 소외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변화한 교육과정에 맞는 대입을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수능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원단체에서는 또 교원 확충 등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교사란 것이다. 교총은 “공교육 경쟁력 강화 방안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피드백할 수 있는 ‘20명 이하 교실’ 구축, 교사 확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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