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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자 수사기관서만 진술
자신의 재판 진행 상황조차 몰라
檢 ‘피해자 법정 진술권 보장’ 계기
‘피해자 중심’ 형사사법 물꼬 기대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는 피해자 등의 신청이 있을 때에는 법원은 이들을 증인으로서 신문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이야기인즉슨 범죄 입증에 수사기관에서의 피해 진술이 충분하다면 굳이 재판의 지연이 야기될 수도 있는 피해자의 법정 증언은 듣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피해자는 결코 재판의 당사자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에서는 그러나 범죄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법정에 나와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넓게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범죄 피해자 재판절차 진술권 활성화 방안’이 바로 그것인데, 살인·강도·성범죄 등 중대 범죄를 기소하는 경우 검찰은 대면·전화·문자메시지 전송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피해자에게 재판절차 진술권의 상세한 내용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진술 의사를 확인할 계획이다. 아울러 스토킹·인신매매 등의 범죄와 관련하여서도 검사가 재판에서 피해자 진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기로 했다. 나아가 검찰은 피해자가 진술 의사가 있을 때 직접 재판부에 피해자 의견 진술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피해자에게 의견 진술서 양식을 제공해 심리·신체·경제·사회관계적 피해상황, 보복에 대한 우려 등을 피해자가 범죄사건으로 인한 다양한 피해를 자세히 글로 써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피해자는 수사 단계에서 진술하지 못하였으나 뒤늦게 알게 된 부분도 진술서에 써낼 수 있으며, 직접 진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동·장애인 피해자 등에게는 국선 변호사나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대단한 약진이다. 지금까지 강력범죄의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만 진술을 주로 할 뿐 자신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피고인의 변호인에 의해 법정에 불려가 반박신문을 당할 수는 있어도 범죄로 인한 피해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호소할 길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살인·성폭력·상해 등 특정 범죄의 피해자나 그 유족이 형사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피해자 참가 제도를 2008년도에 도입하였다. 미국 역시도 거의 모든 주에서 피해자는 공판기일에 재판부에 의하여 증인으로서 신문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본 범죄의 피해로 인해 자신에게 발생한 피해의 내용과 정도, 그리고 피고인에 대한 질문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를 피해영향진술(victim impact statements)이라고 하는데, 미국은 강력범죄의 당사자의 가석방 심사 시에도 피해자의 진술을 구두로 또는 서면으로 반영한다고 알려진다. 일부 주에서는 이런 진술에 피해자가 원래 범죄 발생 당시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해당 범죄가 피해자의 삶에 미친 추가적 영향도 진술하도록 허용한다고 알려진다. 피해영향진술은 영미법 형사소송절차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의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의 한 설문지에 따르면 피해영향진술을 한 범죄 피해자의 약 80%가 이 프로세스로 자신의 피해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느꼈다고 한다.

피해 진술에 포함시킬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알려진다. 범죄로 인한 신체적, 재정적, 심리적, 정서적 영향, 부모나 그 밖의 친족 상실로 인해 발생한 인간관계 차원에서의 손실, 삶의 터전 상실 등 경제적인 배상의 필요성과 마지막으로 가해자의 양형에 대한 피해자의 의견 등.

만일 이와 같은 피해자의 입장이 우리나라의 형사소송의 각 단계, 나아가 석방 결정단계에서까지 미국에서처럼 중요하게 고려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단 부산 오피스텔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애당초 1심에서부터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 부분이 피고인에 대한 죄명 변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만일 조두순 사건에서 적용되었다면 어땠을까? 석방단계에서 조두순은 피해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던 바로 그 지역으로 출소하였다. 조두순은 당시 피해 아동과 한동네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출소 시 피해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었다면 가석방의 심사단계에서부터 조두순의 피해자에 대한 위협이나 피해자의 공포, 즉 정신적인 상해 부분이 조두순의 본적지로의 귀향이 부적절하다고 판정 내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조두순의 원적지 복귀로 피해자는 살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는 범죄피해의 회복이 바로 형사사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국가의 사법체제가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즉 범죄자의 수사와 재판이 적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법제도가 애초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하였던 피해자의 범죄피해로부터의 뒤늦은 회복이나 나아가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 확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온 국민들은 이미 이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다만 사법제도 속 실무자들은 아직도 이런 개념에 낯설어 하는데, 검찰의 이번 ‘범죄 피해자 재판절차 진술권 활성화 방안’이 피해자 중심주의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다. 부디 적법한 생활을 해 온 선량한 납세자들의 권리가 이제서라도 범죄자의 그것보다 중요하게 지켜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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