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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살인죄 최대 사형인데… 영아살해 낮은 형량 왜? [법조 인앤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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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5 20:02:26 수정 : 2023-06-26 02: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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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에 제정… 최대 징역 10년
戰犯 인한 임신 등 처벌 감경 취지
“사회 변화에 맞춘 법 개정 필요”

물리치료사 A씨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여자친구 B씨를 만나 여러 차례 아이를 가졌다. A씨는 그때마다 B씨에게 임신중절 수술과 ‘미프진’(임신중지의약품 미프지미소정) 복용을 권해 최소 2번의 임신중지(낙태)를 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기도 했다.

 

이후 또 한 번의 임신을 한 B씨는 이 사실을 숨겼다. 이번엔 아이를 출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A씨가 알아차린 것은 이미 B씨가 임신 8개월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A씨는 B씨에게 미프진을 복용시켜 또다시 유산을 유도했고, B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 변기에 아이를 분만했다. 당시 아이는 외마디 소리를 냈지만 두 사람은 변기 속에서 끝내 아이를 꺼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지난해 6월 영아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두 사람에게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영아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그대로 방치해 살해했다.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사체를 유기하지 않고 늦게나마 119에 신고한 점,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점으로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때론 ‘피고인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이 감경 요소로 반영되기도 한다. 법원은 영아살해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또 다른 사건들에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및 경제적 이유로 태아를 양육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낙태를 결심했으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낙태를 미루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임신과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당황하고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들었다. 이처럼 법원은 영아살해죄에 대해 일반살인죄보다 현저히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70년 전 세태를 반영해 제정된 ‘영아살해죄’ 조항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251조는 영아살해죄를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분만 중 혹은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로 규정하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일반살인죄가 사형이나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과 형량 차이가 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차이는 영아살인에 일반살인과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고 처벌을 감경하려는 입법 취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아살해죄는 6·25전쟁 이후의 빈곤 상황에 더해 강간 등 전쟁범죄로 인한 임신이 늘어나면서 영아살해와 영아유기 행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던 1953년 만들어졌다.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근 일각에선 시대 변화를 반영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범죄 등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이나 장애·전염성 질환이 확인된 경우 임신중절이 가능하게 됐고, 가정 위탁이나 공개 입양 등 복지 제도가 마련된 상황에서 경제적 사유로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도 감경 사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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