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구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유럽 빅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근 몇 년간 EPL 경기를 시청한 팬들에겐 꽤 익숙한 장면이 있다. 바로 선수들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기 전 모두 한쪽 무릎을 꿇는 모습이다. 인종차별을 반대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EPL에서 이런 퍼포먼스가 시작됐던 건 2020년부터다. 당시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인종차별 규탄 운동의 하나로 전 세계에 확산, EPL을 비롯해 여러 스포츠 현장에서도 무릎 꿇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EPL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축구계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가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 ‘황소’ 황희찬(울버햄프턴), ‘축구 천재’ 이강인(마요르카) 등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유럽파 선수들도 인종차별 피해의 중심에 있다. EPL 득점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손흥민도 인종차별을 끊이지 않고 당하고 있다. 지난달 토트넘과 리버풀의 경기를 중계하던 스카이스포츠 해설가 마틴 타일러는 손흥민의 수비 장면을 보고 “그가 무술(Martial Arts)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인을 그저 중국 ‘쿵후’에 빗대 일반화했다.
이강인 역시 눈 찢기를 수차례 당했다. 심지어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이 훈련 중이던 이강인을 향해 ‘Chino(중국인)’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영상을 통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희찬도 지난해 원정팬으로부터 피부색과 관련된 인종차별 욕설을 들은 바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내 팬들의 분노도 들끓었다. 타지로 떠나 한국을 대표해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모욕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인으로서 스포츠계에서 인종차별 피해자의 편에 함께 서서 연대하는 게 익숙한 우리. 그런데 최근 한국 스포츠에서 인종차별 가해가 일어났다. 울산 현대 수비수 이명재가 소셜미디어(SNS)에서 팀 동료 이규성, 박용우 등과 댓글로 대화를 이어가던 중 2021년 전북에서 활약한 태국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사살락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들은 이명재를 향해 ‘동남아 쿼터’라고 언급하고, 박용우는 ‘사살락 폼 미쳤다’는 글을 남겼다. 이명재의 피부색이 까무잡잡하다는 이유로 놀리는 과정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악의적 의도가 없는 ‘장난’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많은 비판이 이어졌고, 울산의 홍명보 감독까지 고개를 숙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들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오는 22일 열기로 했다.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 K리그에서 인종차별과 관련해 상벌위가 개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6일 페루와 A매치에서 박용우를 교체 투입한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은 경기 뒤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며 감쌌다. 그의 말처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경각심 없이 ‘실수’를 저지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상벌위도 이번 사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당하는 인종차별에 떳떳하게 분노하기 위해 우리부터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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