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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눈부신 안부』 백수린 “포기하지 않는 한,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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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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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는지. ‘파독 간호사’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당시 독일로 건너간 간호 노동자들이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 인상적인 전시회였어. 그러니까 말야⋯.

 

친구 집에서 몇몇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친구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파독 간호사와 관련한 기획전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수린. ⓒ강재훈

세 번째 소설집을 출간한 직후, 소설가 백수린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새 세계를 동경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품고 독일로 떠난 1970년대 이십대 여성들. 그 용감하고, 자유롭고, 밝고, 명랑하고, 호기심 많은 그들의 삶⋯. 자신만이 쓸 수 있는 파독 간호사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팬데믹이었다. 소설을 한창 구상하고 쓰던 시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독일 현지 취재는커녕 한국 내의 여행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고, 국회도서관이나 ‘파독전시관’마저 문이 닫혀 있는 시간이 길었다. 실재한 파독 간호사들을 쓰기 위해선 아무래도 많은 취재가 필요한데. 소설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여러 번 고민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고 취재하면서 쓰고 또 써내려갔다.

 

소설가 백수린이 친구들과 함께 파독 간호사 출신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했던 해미가 20여년 만에 다시 그 사랑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를 펴냈다. 등단 12년 만에 첫 장편으로, 2021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지에 연재된 것을 묶었다.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미는 엄마를 따라서 독일 G시에서 살게 된다. G시에는 1970년대 건너온 파독 간호사 출신 이모들이 있었다. 수재였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파독 간호사가 된 행자 이모,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었던 마리아 이모,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선자 이모⋯. 선자 이모가 뇌종양에 걸리자, 해미는 친구들과 함께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 찾기에 나선다.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게 사랑일 테니까. 봄볕이 나뭇가지에 하는 일이 그러하듯 거부하려 해도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 무엇이든 움켜쥐고 흔드는 바람처럼 우리의 존재를 송두리째 떨게 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까.”(100쪽)

 

해미는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급거 귀국한 뒤, 선자 이모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엉겁결에 하얀 거짓말을 한다. 시간이 흘러서, 해미는 대학 동창 우재와 재회한 뒤 선자 이모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그 마음을 다시 찾아 나서게 되는데⋯.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303쪽)

깊고 느린 시선과, 수채화 같은 담백하고도 섬세한 문장을 선보여온 백수린이 첫 장편으로 펼쳐 보인 이야기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시간을 거슬러 정면으로 응시한 파독 간호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백 작가를 12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소설은 현재의 해미와 우재 이야기와, 파독 간호사 출신 행자와 말숙, 선자 이모 이야기와, 두 이야기를 잇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추적기 3겹으로 전개되는데요.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는 197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만 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태어나서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제가 그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1970년대도, 당시 독일도, 이주 간호 노동자들의 삶도 전혀 모르는 저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파독 간호사’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 개별적인 여성들의 생동하는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소재, 한 여자 아이가 참사 피해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이라는 걸 깨닫는 이야기와 독일 여성들의 이야기를 겹쳐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거짓말이 결정적 고비마다 새 전개를 낳는 대목도 재미있습니다. 왜 거짓말이어야 했을까요.

 

“신춘문예 당선작에서도 저는 ‘거짓말’을 소재로 다루었는데요. 언어에 관심이 많은 터라 그런지, 저는 사실과 거짓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사실이 좋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옳나요? 사실은 정말 진실인가요? 사실엔 정말 거짓이 없나요? 저는 우리가 언어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그 안에는 언제나 사실과 거짓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가진 한계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자신이 말하는/들은 사실이 언제나 100%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점들이 때론 무섭기도 하고, 때론 재미있기도, 신기하기도 합니다.”

 

―해미의 해외 생활이나 파독 간호사들의 생활이 독일 현지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리얼리티 확보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독일에 여행을 다녀온 적은 몇 번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취재를 많이 했어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소설을 완성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소설에선 여러 유형의 파독 간호사들이 나오는데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분명히 읽었는데, 권여선 작가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 파독 간호사가 나온다는 걸 쓰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다시 찾아보니, 심지어 ‘마리아’라는 이름도 소설에 나와서 신기했습니다. 기존 파독 간호사 소설들을 쓰는 동안 일부러 찾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화된 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긴 어렵지만, 기존에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파독 간호사는 가난 때문에 독일로 건너가 희생적으로 산 면이 주로 부각돼 재현된 같습니다. 산업역군으로 영웅시되거나, 타지에서 고생을 하거나, 한국에 돌아와 고생을 하며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요. 당시 독일로 건너간 여성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고, 그 시절 젊은 여성들 중에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사람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제가 파독 간호사 이모들의 삶을 그릴 때는 기존에 재현되지 않았던 다른 면들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 해미와 우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해미가 마음을 열고 한 발 내디딘 만큼, 예전보다는 둘이 더 가까운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로서 해미와 우재를 응원합니다.”

 

요컨대, 소설은 어릴 적 언니를 잃고 상처를 입을 해미가 선자 이모의 첫사랑과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눈부신 도약을 이뤄가는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읽힐 수도. 저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눈부신.

 

―등단 12년만의 첫 장편인데요, 작가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장편의 의미를 말해야 한다면, 제가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용기를 준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전까진 과연 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있었어요. 이 작품이 지금까지 제가 써왔던 것들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챕터가 되어줄지, 새로운 시작의 첫 챕터가 되어줄지 저도 궁금합니다.(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그럴까요? 제가 처음 받았던 느낌은 갈무리하는 것이 된다는 느낌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새 시작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잘 모르겠다가 결론이 됐습니다. 고민했던 주제들을 총정리를 하고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난 그런 특별한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뭔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 유치원 때부터 동화책을 흉내 내 이야기를 만들었고, 초등학교 때엔 공책에다가 이야기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부모님에게 보여주며 좋아했던 그였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으니까. 쓰고 싶다는 그 마음이 재능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열망이 바로 소질이라는 걸.

지금 유학을 가버리면 공부를 계속 해야 할 텐데. 그러면 소설을 쓰는 세계에서 진짜 멀어질 텐데. 소설을 쓰지 못하니 읽는 사람이라도 되자는 마음으로 불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도서관에서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유학을 준비하려던 즈음 고민을 했다. 소설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접으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그래, 잠시 휴지기를 갖고 습작을 한번 써보자. 마침내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습작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 백수린의 원점이었다.

 

“소설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제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쓰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불문과에 진학하고 문학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소설 쓰기에 미련이 남았어요. 써 보지 않으면 후회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2009년 석사 학위를 마치자마자 2년간 습작 생활을 했습니다.”

 

1982년 인천에서 나고 자란 백수린은 2011년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나 경향을 조금 설명해준다면.

 

“저도 제 소설의 경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간 써온 소설들의 중요한 테마가 이번 장편에 많이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언어’, ‘소통’, ‘이방인’, ‘여성’,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제가 소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다루어 왔던 주제들입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은 무엇인지요.

 

“저는 소설을 통해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아주 미세한 감정의 균열을 소설의 언어를 통해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소설을 쓰기 힘듭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인물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감정에 몰입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수채화 같은 문체와 깊고 느린 시선의 작가는, 강의를 비롯해 일상인으로 살기 위해 쓰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글을 쓰거나 번역하며 지낸다. 특별히 소설가로서 루틴이라고 할 게 딱히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돋아나고 있었으니. 지독한 야행성이던 그가 최근엔 조금씩 수면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고, 아침에도 예전보다 조금씩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이전이라면 새벽 서너 시에 자고 오전 10시 반이나 11시쯤 일어났지만, 요즘엔 새벽 2시쯤 자서 오전 9시쯤 일어난다고. 아직도 잘 되진 않지만.

 

점점 당겨지는 수면 또는 기상 시간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운동(필라테스)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몸을 움직이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치곤, 아주 커다란 변화”라고 큰 의미를 부였다.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소설가 백수린이 그렇게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지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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