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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발목 잡힌 법안만 12건… 사실상 ‘상원 노릇’ [심층기획-'권한 조정' 압박받는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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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17 11:39:45 수정 : 2023-06-18 10: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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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무덤’ 악명
다른 상임위서 넘긴 법안 체계·자구심사
권한 넘어서 법안 내용까지 심사 일쑤
원치 않는 법안은 시일 끌어 사실상 ‘킬’
20대 국회도 법사위서 폐기 48건 달해

권한 남용 대안 없나
민주당 “침대축구 논의 더 이상 못 봐”
‘법사위 패싱’ 본회의 직회부 사태 반복
“심사권한 국회사무처 이전” 대안 있지만
與野 당리당략 따라 말 바꿔 논의 안 돼

“법제사법위원회의 침대축구 논의 지연을 이제는 더 이상 지켜볼 상황이 아닙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현장. 민주당 간사인 김영진 의원이 전해철 환노위원장에게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4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고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안 됐다”며 “5월 임시국회에서 법사위는 (노란봉투법) 관련한 논의를 하거나 계획한 게 일절 없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법에 따른 본회의 직회부 요건을 충족했단 걸 강조한 것이다. 국회법 86조는 ‘법사위가 회부된 법안에 대해 이유 없이 회부된 날로부터 60일 이내 심사를 마치지 않았을 때 소관 상임위가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법사위 논의 내용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법사위는 체계·자구심사를 하는 것이지 노란봉투법 내용에 대해 논의하는 건 법사위 권한을 벗어나는 행위”라며 “법사위가 내용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사실 권한 밖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최근 야당이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사위에 대한 비판을 자주 쏟아내고 있다. 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노릇을 하며 소관 상임위원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뭉개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상임위 소관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심사를 담당하는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의 경우 ‘법안의 무덤’이라는 악명이 붙은 지 오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대 야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오용하는 걸 막기 위해 그 권한을 다른 기구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년 넘게 ‘무덤’ 못 나온 법안 12건

16일 국회 법사위에 따르면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계류 중인 법안은 이날 기준 총 186건이다. 가장 오래된 건 21대 국회 출범 이후 3개월여 지난 2020년 9월22일 회부된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었다. 경찰청장·해양경찰청장의 안정적 임무 수행을 위해 임기 만료일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걸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2년9개월 가까이 법사위에 잡혀 있는 상태다. 비슷한 시기인 2020년 9월24일에 회부된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애니메이션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여전히 체계·자구 심사에 묶여 있다. 이들을 포함해 2년 넘게 계류 중인 법안만 12건이다. 이들 법안은 결국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체계·자구심사에 발목이 잡혀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은 48건이나 됐다.

김관옥 계명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법사위원들이 원하지 않는 법안이 들어오면 2소위에 놓고 시일을 끌어서 사실상 킬시키는 수단으로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사위원장이 속한 정당이나 법사위원 개개인의 이해에 따라 개정안의 본회의 회부가 결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법사위가 사실상 체계·자구뿐 아니라 법안 내용 자체에 대한 심사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 86조는 ‘법사위는 회부된 법안에 대해 체계·자구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장 지난달 24일 열린 법사위 2소위 회의록만 봐도 단순히 체계·자구에 대한 논의라고 보기 어려운 법사위원의 발언이 확인된다.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이 회의에서 변리사법 개정안에 대해 “(법이 통과되면 특허 소송이) 신속해진다, 비용이 절약된다, 이런 부분이 과연 논리적인 정합성이 있는지 굉장히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가결한 해당 개정안은 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 관련 민사소송에 대해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특허청·산업계·변리사단체 측이 이 개정안 통과로 기대되는 효과라 설명하고 있는 소송 신속성 제고·비용 절약 등 이점에 대해 박 의원이 직접 반대 의견을 낸 셈인데, 이는 아무리 봐도 체계·자구에 대한 의견이라 보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관계자들이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들을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안 있지만 당리당략에 뒷전

이런 사정 때문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는 중이다.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회에서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가 처리한 법안을 재차 검토하는 게 적절치 않기 때문에 그 권한을 국회사무처 법제실 등이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의 긍정적 기능으로 평가돼온 소관 부처나 유관 상임위 간 의견 조정은 상임위 간 연석회의나 전원위원회 제도를 활성화해 해결할 수 있다는 대안도 나온 지 오래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국회사무처 내에 조직을 따로 만들어서 체계·자구 심사를 맡기는 식으로 해서 법사위가 일종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남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계속 본회의 직회부로 법사위를 패싱하는 현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관옥 교수도 “각 상임위의 전문적 영역을 법사위가 다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갖게 하는 건 결국 여야 갈등의 소지만 늘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는 건 결국 각 당이 처한 상황에 따라 법사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다수당일 때는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다가 소수당이 되면 이 문제를 묵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이해를 떠나 입법 제도의 정상화 차원에서 정치권이 진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분명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은 상당히 많다”면서 “다만 당리당략에 따라 목소리를 내다 보니깐 결국 이 문제도 정치적 사안 중 하나가 돼 논의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환·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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