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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변심’ 아닌 ‘보급비리 덤터기’ 때문”... ‘1977년 김일병 자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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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25 10:52:39 수정 : 2023-05-25 13: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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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속대 군수장교 “간부들이 주택 4채를 짓기 위해 빼돌린 자재가 부대에 도착하지 않은 책임을 전부 김씨에게 뒤집어씌웠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되지 않음. 클립아트코리아

 

오는 9월 종료되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오래 전 군 비리와의 연관성이 제기됐으나 ‘개인적 이유’에 따른 자살로 처리됐던 한 병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주목받고 있다. 

 

24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1977년 스스로 폭약을 터뜨려 숨진 후 ‘애인변심과 가정 빈곤에 대한 비관’을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김진도 일병(당시 22세)의 가족들이 지난 3월 국방부에 김씨 사망과 군 복무의 연관관계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앙일보가 만난 김일병의 작은 형 김진하(74)씨는 군이 주장한 것과 달리 당시 김일병은 애인이 없었으며, 삼남이지만 고등학교까지 마칠 정도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했다. 게다가 사고 당시는 김일병의 두 형이 모두 취직해 가정형편도 폈을 때였다고.

 

그렇다면 군은 무슨 이유로 있지도 않은 애인을 만들어 김일병 자살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야 했을까. 김진하씨에 따르면 부대에서 만난 고참이 그에게 일찍이 “간부들이 공사비 몇 억을 해 먹은 걸 김씨가 알아서…”라고 김일병 죽음의 이유를 털어놨다.

 

하지만 진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얼마 뒤 부대 간부가 공사용 자재를 횡령해 신축 주택을 지은 것이 밝혀져 대위 1명이 징계를 받았지만, 김씨 죽음과의 연관성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김진하씨는 “그때 재판까지 가서 끝까지 밝혀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서 힘 없는 사람은 밝힐 수도 없었고 헌병대에 가서 고발해봐야 들은 체도 안 하고 사건 끝난 걸 가지고 왜 그러냐고 했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

 

“상급자들이 자재 횡령 후 김일병에게 책임전가”

 

2020년 김진하씨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법정 접수기간을 열흘 남기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정을 냈다. 위원회 조사관이 당시 부대 간부 및 병사들을 찾아 상황을 묻자 “가정 빈곤도 애인 변심도 아니고 보급 문제 때문”이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당시 김일병은 탄약고 공사 자재 및 장부 정리 담당이었는데, 간부들이 조달청에서 나오는 공사 자재를 빼돌려 부대 후문에 가정용 단독주택 4채를 짓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 것.

 

당시 소속대 군수장교였던 A씨는 “간부들이 주택 4채를 짓기 위해 빼돌린 자재가 부대에 도착하지 않은 책임을 전부 김씨에게 뒤집어씌웠다. ‘중간에 다른 자재 가게에 팔아먹은 것 아니냐’며 간부들이 짜고 그 어마어마한 자재를 빼돌린 걸 김씨의 책임으로 몰았으니 김씨가 살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선임병이었던 B씨는 “빵꾸가 났는데 그 규모가 크고 상급부대에서 검열이 나온다고 하니 김씨가 일주일 넘게 잠도 못 자고 장부를 맞춘다고 고생을 했다”며 “공사계는 보통 7~8개월 정도 인수인계 기간을 주는데, 김씨만 아주 짧게 사수와 근무하고 사수였던 병장이 전역을 했다”고 했다.

 

자재를 빼돌려 완공된 집은 대대장·작전장교·주임상사 등 4명 간부들 이름으로 등기됐다. 횡령을 주도했다고 지목받은 대대장은 대령으로 진급한 뒤 2015년 숨져 현충원에 묻혀 있다.

 

진상규명위는 조사 끝에 “망인은 소속대 부대장과 간부들의 군용물품 횡령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간부들에 의한 군용물 횡령 등 비리와 이에 대한 책임 전가가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했으므로 망인의 사망과 군 복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되지 않음. 클립아트코리아

 

상급부대 검열 앞두고 걱정 털어놨던 동생

 

1977년 6월, 휴가 기간 충북 청주의 고향집에 내려온 당시 22세의 일병 김진도 씨는 형 김진하씨에게 “내가 잘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큰일났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당시 28세였던 김진하씨는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김일병은 탄약고 공사 장부에 대한 상급 부대의 검열을 앞두고 있었다. 김일병은 경기도 양주군(현재 남양주시) 별내면의 부대로 복귀한 지 15일만에 부대 탄약고 공사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스스로 터뜨려 숨졌다.

 

전화를 받고 부대로 달려간 김씨가 본 건 처참한 모습의 동생이었다. 헌병대 수사관은 사망확인조서에 동생 김씨가 “가정빈곤 및 애인 변심을 비관코 자해 사망했다”고 썼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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