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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귀지 떼다 피 냈다”며 소송 건 부모…“소아과 의사 없는 게 낫겠다” 의료계 자조

입력 : 2023-05-22 16:59:28 수정 : 2023-05-22 23: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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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 제거하다 피나자 2000만원 민사소송 제기
이비인후과 권유에 보건소에 ‘진료 거부’ 민원도
담당 전문의 “이런 꼴 보려고 버텼나” 하소연
게티이미지뱅크

 

지방의 한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다른 과 진료를 권유했다가 진료 거부 혐의로 관할 보건소의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소아과 전문의가 귀지를 잘못 뗐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사실도 알려지며 의료계 내부에선 도 넘은 보호자들의 갑질이 소아청소년과 폐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익명 게시판에 따르면 최근 경북 포항의 한 소아청소년과 A 전문의가 진료 협조가 어렵고 의료 소송도 우려돼 24개월 미만 영아에게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가 진료거부 혐의로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한 부모로 인해 조사를 받은 사연이 올라왔다.

 

A 전문의는 “목 시진(눈으로 환자의 상태 관찰), 폐 청진, 귀 진료를 다 봤는데 아기가 어리고 협조가 어려워 ENT(이비인후과) 진료를 권유했는데 (아기 부모가) 보건소에 진료거부로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면서 “능력이 안돼 귀지를 못 빼겠다고 한 것이 진료거부에 해당하느냐”고 토로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 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거나 진료하지 않는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가 타 전문과목 영역 또는 고난이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도 정당한 진료거부 사유 중 하나에 해당된다.

 

A 전문의는 아기가 진료 중 움직여 다칠 수 있고, 다쳐서 피가 나 의료 소송이 제기된 사례도 있어 지금 상태에서 아기의 귀지를 제거하기 힘들다고 설득했다. 특히 소아는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채혈이나 진정 치료 중 사망 시 손해 배상금이 보통 수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보호자는 “다른 방 원장한테라도 받겠다”며 끝까지 진료를 고집했다고 한다. A 전문의는 “4일간의 발열로 이미 병원 3군데를 거쳐서 온 타지역 초진이었다. 열이 많이 났고, 중이염일 수도 있으니 이비인후과에서 귀지를 빼고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고 (부모에게)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며 “다른 방 원장한테 넘겨서 귀지를 빼다가 피라도 나면 대형사고다 싶어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유했지만 병원 진료가 끝날 때까지 가지 않고 실랑이를 했고 진료확인서를 발급받아 보건소에 민원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A 전문의는 “겨우 이런 꼴 보려고 여태까지 버텼나 싶다. 이제는 그만두라는 시그널일까요”라며 착잡함을 드러냈다. 이후 포항북구보건소는 진료거부 민원이 제기된 A 전문의에 대해 ‘진료거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뉴시스

 

이에 앞서 올해 초 어린 아이를 진료하다가 한 소아과 의사가 민형사소송을 당한 사례도 뒤늦게 알려지며 의료계 일각에선 보호자의 과한 민원 등 ‘갑질’ 등으로 힘들다며 ‘소아과 의사를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오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아과 전문의한테 귀지 떼다가 피났다고 민형사소송’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관련 내용을 알렸다.

 

글에 따르면 해당 부부는 중이염이 의심되는 아이의 귀를 내시경으로 보기 위해 소아과 의사에게 찾아갔고, 아이 귀지를 먼저 제거했다. 그런데 귀지 제거 후 아이 귀에서 피가 나자 이들 부부는 담당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상죄로 형사고소한 데 이어 2000만원을 배상하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임 회장은 “아이들 외이도는 혈관이 묻혀있는 피부 두께가 얇고 귀지가 딱딱한 경우가 많아 귀지 떼다가 피나는 경우가 흔하다”며 “피가 나도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지면 끝이고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다. 팔등에 피났다가 딱지 앉는거랑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막에 손상이 가더라도 이소골 손상이 아니면 시간 지나면 아물고 문제 없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다”라며 “심지어 이 케이스는 의사가 피를 냈는지, 아이가 귀에 손을 넣어 피를 냈는지, 보호자가 피를 냈는지 증명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보호자들을 비판하며 “이런 식이라면 이 땅에 소아과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낫겠다”고 덧붙였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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