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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히로시마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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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22 00:00:05 수정 : 2023-05-22 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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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념공원 ‘원폭 참상' 보존
韓 희생자 위령비도 아픈 역사
G7정상 ‘핵무기 없는 미래' 지향
정치 수사 아닌 책임감 보여주길

1945년 8월 6일, 당시 2살이던 다오다 히로군은 엄마 렌씨의 등에 업혀 히로시마역을 나오다 피폭됐다. 원자폭탄 폭발로 인한 열선에 노출된 모자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물을 마시고 싶다.” 엄청난 고통에 아이는 하염없이 물을 찾으며 울었다. 하지만 마지막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렌씨는 물을 마시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피폭 당일 오후 11시쯤, 다오다 군은 세상을 떠났다. 불과 2년을 살다 간 아이의 작은 바람을 이뤄주지 못한 건 렌씨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한다. 다오다군이 피폭 당일 입었던 찢어진 속옷, 피폭 전에 찍은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은 뚜렷하게 대비되며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전한다.

2023년 5월 21일, 히로시마역은 주민들, 히로시마를 찾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역사(驛舍)에는 수많은 상점이 자리 잡아 성업 중이다. 주변의 고층건물들과 사람들을 태우고 오가는 차량은 인구 110만명인 이 도시의 활기를 전한다. 70여년 전 2살배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사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히로시마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과거와 현재를 품은 도시가 있을까.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을 찾으면 이런 생각이 짙어진다. 1955년 평화기념공원 내에 설립된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은 원폭 투하 직후 히로시마의 상황을 전하는 사진, 피폭자의 유품 등 2만2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물은 당시의 상황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불에 탄 시신, 끔찍한 부상을 입은 피폭자 사진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고통스럽다. 참상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한 글과 그림도 마찬가지다.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고통임을 전시물들은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자료관 가까이에 세워져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는 히로시마의 비극이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의 일부임을 전한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기념공원이 잘 가꾼 나무, 주변의 흐르는 강 등과 어울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건 이질감을 들게도 하지만 끔찍한 고통을 극복해 온 히로시마의 의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21일 진행된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는 기후변화, 식량문제, 전염병 등 많은 전 지구적 과제를 다뤘지만 핵군축, 비확산 의제가 유난히 또렷했다. 개최지가 히로시마란 자체가 그렇다. 참가국 정상들의 첫 공식일정이 자료관 방문이었다.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가 필생의 정치적 과제임을 자부하는 정치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가능성을 언급하는 최근의 국제정세는 히로시마의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핵무기 개발, 위협을 일삼은 북한으로 인해 우리에게 이런 공포는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G7은 핵무기 없는 세상의 지향을 공언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회원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핵보유국이다. 핵무기 없는 세계의 중요성을 보여주겠다며 개최지를 히로시마로 정한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을 안보의 중요한 지렛대로 삼고 있다. 일본이 히로시마의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원폭 투하 이후의 참상은 뚜렷하지만 그런 결과를 초래한 20세기 초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의 비극을 오롯이 되새기고, 그 기억을 국제사회가 반복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감내해야 하는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핵무기 없는 세상이 인류의 안녕과 번영에 중요한 조건임을 히로시마처럼 잘 보여주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자료관을 보며 G7 정상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감상 역시 다르진 않을 것이지만 중요한 건 막대한 책임, 의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히로시마에서 내놓은 G7 정상들의 핵무기 없는 세계의 약속이 반복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기를 희망한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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