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제각각 ‘민간 자격증’ 발급
세무서 영업허가 받고도 ‘집유’
정부 규제 개선 약속 ‘흐지부지’
“국제 정식과정 거쳐” 합법 촉구
의협 “의사 필요 위험 시술” 반대
지난 13일 오전 울산지법 한 법정. 대기업을 퇴직한 70대 남성이 변호사와 법정에 출두했다. 골반을 바로잡고, 굽은 등을 손으로 펴는 자세교정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다. 그는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성 측은 “회사에 다니던 때부터 (척추 교정에) 관심이 있어 계속 공부해왔다. 사설협회에서 ‘합법’이라고 해 자격증을 땄고, 세무서에서 영업허가까지 받았다. 이게 불법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자신의 집에서 ‘자세교정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세교정술을 해왔다. 건물 외벽에 걸린 간판엔 ‘골반, 허리, 목, 팔, 다리 카이로프랙틱 시술로 통증 완화’라고 적었다. 자세교정술 1회당 5만원씩을 받았다. 그는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20년간 척추교정술을 한 달인이지만, 법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의료인이 아니면서 간판을 설치해 의료광고를 게시하고, 의료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척추나 골반, 어깨, 팔 등 신체 곳곳을 손으로 누르고 비틀고, 당겨 자세를 교정한다는 ‘카이로프랙틱’ 시술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난립하고 있다. 예전 정부의 ‘단두대 규제(비효율적 규제를 단번에 처리한다는 의미)’ 항목으로 한 차례 묶이면서, 무허가 시술이 마치 합법화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포장된 것이다. 협회가 7곳 이상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에선 제각각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면서 불법의 합법화가 더욱 공고해졌다. 도심 곳곳에 ‘카이로프랙틱’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곳이 쉽게 보일 정도다. 그러다보니 카이로프랙틱이 불법임을 인지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 카이로프랙틱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0년쯤부터다. 해외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증을 획득한 카이로프랙틱 닥터들로 꾸려진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에서 제도권 진입을 요구하면서다. 이들은 해외에서 면허를 땄는데도 한국에서는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각종 소송을 제기했다. 2005년엔 “의료인, 의료법인 등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까지 냈지만, 결국 기각됐다.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헌법상 정당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요구가 계속 이어졌고, 정부도 이를 과잉 규제로 판단하고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수기를 이용한 척추관절 치료기술의 실태조사 연구’ 용역을 맡겼다. 카이로프랙틱 등 도수치료 현황과 해외 면허제도, 교육시스템을 확인하려 했다. 카이로프랙틱이 미국, 영국 등 60여개 국가에서 합법적인 의료행위로 인정받고 있고, 국내에 시장 수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있는 만큼 새로운 직업으로 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려는 것이었다. 용역 결과가 나온 2016년 12월 대한의사협회 등 관련 13개 단체 관계자들과 회의도 열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완화 검토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흐지부지됐다.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는 여전히 ‘전문성’을 내세워 카이로프랙틱의 제도권 진입을 바란다. 이들은 “4200시간 이상의 국제적인 정식과정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거나 해외 면허를 취득했다”며 “우리가 바라는 건 범법자만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카이로프랙틱은 도수치료 중에서도 고위험 시술이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러한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단속을 보건소·경찰에서 하고 있어 얼마나 단속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지만, 현재 합법화를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인 문신과 비슷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카이로프랙틱의 합법화는 당장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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