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달 24일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하는 ‘디렉터스 컷 어워즈’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한 윤제균 감독은 한국 영화의 위기를 화두로 꺼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윤 감독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두렵다”며 “시장은 줄어들고 관객은 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가능성이 희박한 제품에 투자하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진 코로나 당시 만들어 놓은 영화가 있지만 이제 한국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부터는 아마 극장에 한국 영화가 한 달에 몇 개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 천만흥행작을 만들어낸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 영화, K무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에서 K팝을 필두로 K드라마와 K푸드, K웹툰 등 한국 문화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지만 종합예술이라 평가받는 영화의 사정은 다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대작의 흥행 속에 K영화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 영화시장은 일본 영화 흥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는 안타깝게도 침체한 모습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봉 5주차 주말 40만명이 넘는 관객을 추가하며 5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다. 누적 관객 수는 430만명을 돌파, 올해 국내 개봉 흥행 1위 영화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444만명)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비해 한국 영화 실적은 암울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19.8%, 매출액 점유율은 19.5%를 기록했다. 관객 수는 127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월의 7.4%에 그쳤다. 지난 1월 319만명에서 무려 71.5%가 줄었고, 지난해 2월과 비교해 11만명(7.7%)가 줄었다.

매출액은 134억원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월의 9.2%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7억원이 늘어 5.5% 증가했지만 한 달 전의 315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70.1%가 줄어든 금액이다.
영화진흥위원회마저도 한국 영화의 부진에 대해 “팬데믹 이전의 2월은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한국 영화가 흥행하는 시기로 국산 작품이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었는데 올해는 성적이 저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 영화의 위기를 초래했을까. 윤 감독 설명처럼 우선 양질의 영화가 나오기 위한 투자의 씨가 말랐다. 그간은 CJ ENM이나 롯데컬쳐웍스 같은 메인 투자배급사가 나머지 자금의 투자를 담당하는 구조였지만 한국 영화의 흥행이 계속 저조하자 투자의 7, 80%를 담당하던 금융권 자금이 지속해서 이탈했다.
또 한가지는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과 관객 사이 괴리다. 우선 티켓 가격이 비싸다. 앞서 언급한 토크쇼에서 최동훈 감독은 “극장비를 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관 3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평일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으로 영화 티켓 가격을 인상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4000원이나 올랐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주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사용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시청 트렌드가 변화했지만 오히려 극장가는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평일 영화 티켓 한장 값이 주요 OTT의 한 달 이용료보다도 높다 보니 관객들은 가격적 매력이 낮아진 극장에 등을 돌렸다.
코로나로 수익 직격탄을 맞은 극장은 한국 영화 흥행을 위한 티켓 비용 인하가 아닌 당장의 수익 향상에 나섰다. 콘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관 서비스에서부터 팝콘 등 매점 음식의 배달 서비스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에 수익이 생기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극장 티켓 가격을 내리면 과연 한국 영화의 흥행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티켓 비용 인하를 통해 관객들의 발길을 다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질적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OTT의 사용과 다른 상영관 안에서 다 함께 환호하고 감동하는 극장만의 장점이 분명 있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선 영화 자체가 재밌고 흥미를 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