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규모가 8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원가 상승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보류되면서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위기를 맞은 지난해 말처럼 한전채가 일반 회사채로 가야 할 수요를 빨아들이는 악재가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본PF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차환 부담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올해도 8조…한전채 발행 회사채 블랙홀 우려
5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한전채 잔액은 68조300억원으로 1년 전 기준 39조6200억원과 비교해 72%가 늘었다. 이달에도 한전채 잔액은 3일 기준 74조7000억원으로 6조6700억원 증가했다.
올해 한전채 발행 규모를 보면 1월 3조2000억원, 2월 2조7000억원, 3월 2조900억원으로 1분기에만 8조100억원이 발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6조8700억원을 발행한 것과 비교하면 약 17%가 늘었다.
한전채는 국채처럼 원리금 상환이 보장되는 최우량 채권으로 평가받는다. 회사채와 마찬가지로 3년 또는 5년 만기 일시상환조건으로 3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한다. 한전채는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의 5배까지 발행할 수 있다. 현재 한국전력의 자본금과 적립금은 20조9200억원으로 104조6000억원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29조9000억원까지 추가발행할 여력이 있는 것이다.
한전채 발행을 확대할 경우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발생한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한전채의 기준금리는 5%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한전채로 대거 몰려 일반기업의 회사채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한 언론사 포럼에서 “작년 말 단기 자금 시장의 교란 요인 중 하나가 한전채 등 고신용 채권이었다”며 “올해 한전채 신규 발행 규모를 관리 가능한 수준인 10조원 미만으로 하자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증권가는 올해부터 글로벌 긴축 속도가 조절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난해 같은 자금경색 우려는 작다고 내다봤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보다 유가와 환율이 안정되고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까지 멈춘다고 하면 한전채 발행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1분기는 선조달 차원에서 한전이 회사채를 많이 조달했지만 한국전력의 원가부담이 줄고 있는 만큼 하반기에는 발행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이 없는 상황에서 한전의 만성적자 구조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NH투자증권은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 추정치를 12조6000억원으로 기존 8조6000억원 대비 상향했다. 지난해 한전은 32조6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적자를 냈다. 이민재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기요금 인상이 유일하다”며 “여름과 겨울 전기요금과 관련한 국민부담은 극대화되기 때문에 남은 분기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위험신호 계속되는 부동산PF…브리지론 경고등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권 충격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제2금융권이 부동산 PF 부실의 연쇄효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특히 최근 들어 지방 공사현장, 브리지론을 중심으로 손실 우려가 커진다. 정부는 손실 우려가 있는 일부 사업장에 대한 집중 관리에 나섰다.
이날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방을 중심으로 브리지론의 기한이익상실(EOD·만기 전 대출금 조기회수)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2022년 하반기 만기도래 브리지론의 상당 규모가 본PF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브리지론 차환 부담을 앞으로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브리지론이란 토지 매입 등 초기 사업비 명목으로 대출하는 자금으로 본PF 전에 시행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대출이 이뤄지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 악화로 착공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본PF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브리지론을 실행한 제2금융권의 부담이 커지는 추세다. 2023년까지 만기도래하는 부동산PF 금액 약 14조원 중 58.4%가 브리지론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미분양 우려로 수백억원 손실을 감수하고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지방을 중심으로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며 “브리지론을 많이 취급하고 있는 증권사, 여전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은 위험에 크게 노출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한신평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저축은행이 취급한 브리지론 747개 사업장과 본PF 856개 사업장을 분석했다. 브리지론의 경우 25%, 본PF는 15%가 1회 이상 연기됐으며 만기가 미도래한 사업장 중에서도 브리지론 사업장 28%, 본PF 사업장 16%가 올해 말까지 만기가 2회 이상 도래할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경기 악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출 만기가 돌아오게 되면 이자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제2금융권이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브리지론의 만기 연장이 많이 이뤄진 대상은 지방 아파트로 이 가운데 34%는 1회 이상, 13%는 2회 이상 만기가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일부 사업장에 대한 세밀한 관리에 나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중소기업벤처부와의 업무협약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300∼500개 사업장을 중요 관리 사업장으로 보고 세밀하게 챙겨보고 있다”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적절한 형태의 가격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존 분양가격을 고집하지 말라고 건설사들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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