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인들 영웅적 모습 잘 전해지길"
‘우리는 하나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튀르키예(터키) 전시실을 장식한 튀르키예 국기 위에 적힌 문구다.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 고교 학생들이 손가락에서 흘린 피로 글씨를 쓰고 저마다 손도장도 찍었다고 한다. 연인원 2만명이 넘는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시켜 한국을 도운 튀르키예의 희생에 새삼 눈시울이 붉어지며 왜 두 나라가 형제국,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지 깨닫게 된다.
전쟁기념관의 튀르키예 전시실이 한층 더 풍성해졌다. 1일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따르면 튀르키예 국방부는 최근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 장병들이 사용한 군복과 물품들을 추가로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무랏 타메르 주한 터키 대사가 직접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김영철 전쟁기념관장과 만나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튀르키예 대사관 국방무관이 군복, 무기 등 유물을 전쟁기념관 측에 전달했다.
현재 전쟁기념관 3층의 유엔실에는 6·25전쟁 당시 전투병력을 보낸 16개국을 소개하는 나라별 전시 공간이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육군 1개 여단을 참전시켰는데 연인원으로 따져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들에 비해 전시물 종류가 적어 아쉬움을 남겨 온 것이 사실이다.
튀르키예 대사관은 “이번 기증으로 전쟁기념관의 튀르키예 전시실이 더 풍성하게 보완되었다”며 “6·25전쟁에 ‘북극성’ 부대로 참전했던 튀르키예 여단의 역할을 강조하고, 튀르키예 군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잘 보여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의 권고에 따라 파병을 결정한 튀르키예는 1953년 7월까지 3년 넘게 이어진 전쟁 기간 연인원 2만1000여명의 육군을 파병했다. 이 가운데 약 1000명이 전사하는 등 2000여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튀르키예 전사자 대부분은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옛 유엔군묘지)에 잠들어 있다.
올해 2월 튀르키예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들어 긴급구호대 파견을 지시했다. 형제의 나라란 점을 감안해 역대 최다인 140여명 규모로 구호대가 편성됐다. 구호대가 지진 피해 현장에서 부상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 등 활동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한 뒤 윤 대통령은 그들 전원을 초청해 치하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튀르키예 구호 현장에서 보여준 여러분의 연대정신은 한국과 튀르키예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진정한 친구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웠다”며 “정부는 여러분의 헌신과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튀르키예 복구와 재건을 위한 지원도 앞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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