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연준의 ‘베이비 스텝’으로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이는 22년 만에 역대 최대 차가 됐다. 금리 차 확대로 자본유출 가능성이 나온다. 4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 정부는 미국 은행 위기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실물 경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파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없다”
연준은 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성명에서 기준금리를 연 4.50∼4.75%에서 연 4.75∼5.00%로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번 달 초만 해도 미국 국내 물가 상승세 견조 등의 이유로 연준이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으로 금융 불안 우려가 제기되면서 0.25%포인트 인상 정도로 갈음한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준금리는 연 3.50%다. 연준 결정으로 한·미 양국 기준금리 차는 1.5%포인트(상단 기준)로 벌어졌다. 2000년 5~10월 이후 22년 만에 최대 격차다. 일반적으로는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높은 국가로 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긴다. 금리 차가 커질수록 자본유출 우려는 높아진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대외 여건의 변화와 자본 유출입 동향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폭이 낮아지면서 한은 기준금리 인상 부담은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그동안 펼쳐온 금리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완화 효과를 확인하겠다고 했었다. 이에 4월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 동결 전망 유력 속 연준의 빅 스텝 여부가 변수였다. 결국 한은으로선 연준의 ‘베이비 스텝’ 행보로 4월 금통위 결정에 여유를 확보하게 됐다. 다음 금통위(4월11일)에선 3월 물가상승률이 기준금리 결정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예상인 4% 초반보다 높게 나올 경우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9.4원 하락한 1278.3원에 마감했다. 외환시장이 연준의 결정을 긴축 속도 조절로 해석, 달러가치가 낮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추경호 “실물 경제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 등 배제할 수 없어…높은 경계심 갖고 예의주시”
정부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실물 경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응에 나섰다. 한은은 최근 SVB 파산 사태가 국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겠으나, 사태 악화 시 비은행 금융기관 등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세계 경제가 장기간 지속한 저금리 상황에서 벗어나 고강도 통화 긴축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소형 은행 위기와 같은 글로벌 금융 시장 불안 재연 및 실물 경제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높은 경계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우리 금융시스템 및 금융회사 전반의 건전성을 상시 점검하겠다”면서 “필요시에는 이미 마련된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시장안정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SVB 파산 사태와 관련해 “국내 금융기관은 유동성 및 건전성 상황도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사태 악화 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일부 취약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 경계감 고조로 불안이 퍼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해 한은은 SVB 파산 후 변동성이 높아졌으나, 글로벌 금융불안 우려가 진정되면서 위험회피심리 확산도 제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태로 글로벌 금융 여건이 급변할 경우 금융시장 가격변수의 변동성 확대, 일부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 경계감 부각, 취약부문의 잠재 리스크 현실화 우려 등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6%로 집계돼 2018년 4분기(40.4%) 이후 4년 만에 40% 선을 넘었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자 부담이 커진 탓이다. DSR가 40%를 초과하면서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고위험가구 비율도 올해 2월 기준 전체의 5%를 차지해 2021년 말(2.7%)보다 두 배가량 급증했다.
◆온라인 통한 정기 예·적금 비교 서비스 6월부터 시작
온라인으로 금융사 정기 예·적금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는 중개서비스가 6월부터 시작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5대 시중은행이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예·적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을 증대할 방침이다. 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의 공동대출 모델도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4차 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9개 기업의 온라인 예금상품 중개서비스를 6월부터 순차적으로 출시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지정한 뱅크샐러드, NHN페이코, 줌인터넷, 깃플, 핀크, 비바리퍼블리카, 네이버파이낸셜, 씨비파이낸셜, 신한은행이다. 추가 진출 의사를 밝힌 핀테크, 신용카드사 등 10여개 기업에 대해서도 5월 말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심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포털이나 플랫폼은 상품의 단순 정보제공만 가능하고, 소비자가 직접 탐색·비교 뒤 지점 내지 금융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하는 방식이었다. 중개서비스가 시범 운영되면 소비자는 플랫폼의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예·적금 상품을 비교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사의 알고리즘을 통해 여유 자금, 우대금리, 각종 혜택에 맞춘 상품들을 추천받는 것도 가능하다. 상품 가입도 금융사 홈페이지 등을 따로 거치지 않고 플랫폼 안에서 바로 가능하다. 만기 알림, 갈아타기 추천 등 사후관리 서비스까지 이뤄질 수 있다. 과도한 자금이동 방지를 위해 금융회사별 플랫폼 판매 비중은 전년도 예·적금 신규모집액 기준 은행 5%, 기타 금융회사 3%로 제한된다. 강영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모든 은행이 다 참여한다고 전제하면 예·적금 규모 자체는 1000조원이 넘고 여기에 플랫폼 판매 한도 5%를 적용하면 50조~60조원 수준”이라며 “상당히 큰 규모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시범운영을 통해 과도한 수신경쟁 여부, 불완전 판매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내년 중 정식제도화를 검토한다. 정식제도화 추진 시 은행 간 유효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시입출금 예금상품’까지 포함하거나 회사별 모집 한도 제한을 푸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
전날 실무작업반은 아울러 인터넷전문은행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이 자리에서 경기가 어렵고 고금리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다며 중저신용자 대출비중 목표 완화를 건의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대출비중을 완화할 경우 중저신용자들이 보다 높은 금리에 노출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저신용자 대출비중 완화보다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 취지이자 설립 당시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제안한 지방은행과의 공동대출 모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인터넷은행의 우수한 모객력과 대출재원을 확보한 지방은행 간 협업으로 경쟁촉진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토스뱅크와 광주은행이 추진 중이다. 김 부위원장은 금융위·금감원 담당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당부했다
김 부위원장은 “당초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과 IT의 융합 등으로 금융혁신과 은행권 내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도입되었는데 지금까지의 인터넷전문은행 성장 과정을 보면 급격한 외형성장에 치중한 측면이 있었다”며 “기존 은행권의 서비스 비용이 많이 들거나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 중 인터넷전문은행이 ‘메기’로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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