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석 “공연일 날씨 상당히 건조했었다” 전해

관현악 공연 도중 악기가 파손됐는데도 이를 적절히 대처해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어느 타악기 연주자의 경험담이 소개됐다.
KBS 교향악단은 지난달 23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2036석 규모 롯데콘서트홀에서 제787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무대에서는 소련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교향곡 제11번 ‘1905’(g단조·작품번호 103)가 연주되고 있었다.
무대의 가장 뒤에 위치했던 이원석 팀파니 수석은 작품이 2악장에 접어들자 격렬한 악조에 맞춰 각각의 고유 음정이 조율된 4개의 팀파니를 열정적으로 연주중이었다.
그런데 이 수석은 연주 도중 악기의 소리와 울림이 이상해진 것을 것을 느꼈다.
그가 지휘자와 악기를 번갈아 주시하며 격렬하게 연주하는 순간, 2번째 저음을 담당하는 팀파니의 ‘헤드’(상단 북면) 하단이 횡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부가 보일 정도로 완전히 찢어졌다.
지난 15일 악단 측이 유튜브에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 수석은 “공연 당일에 날씨가 너무 건조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보다 정확한 연주를 위해 악기를 직접 바라보고 연주하는 상황이었다”면서 “그런데 악기가 처참하게 찢어지는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상당히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이 수석은 “악기가 건조해질 경우 스펀지나 댐핏(Dampit)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습도를 조절한다”고 설명하며 “그 날 굉장히 많은 스펀지와 댐핏을 사용했는데도 악기가 완전히 갈라졌다. 그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무대에서 이 수석은 결국 팀파니 3개로만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팀파니가 쉬는 마디에 접어들자 헤드가 찢어진 악기를 옆으로 이동시켰고, 악기 3개 중 1개에 귀를 밀착시켜 다시 조율했다.
정확한 조율에 성공한 이 수석은 연주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악장까지 연주가 끝나자 엘리아후 인발(87·이스라엘) 지휘자는 이원석 수석을 기립시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 수석은 그제서야 밝은 미소를 보이며 안도했다.
단원들은 이 수석의 악기가 파손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감탄했고, 관객들 역시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며 이 수석이 보인 프로 정신에 화답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사람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빈야드석(무대 뒤편)에서 이 공연을 관람했다는 한 관객은 “오케스트라도 일품이었지만 무엇보다 팀파니 연주자의 연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며 “팀파니가 찢어졌던 2악장의 바로 그 부분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던 줄은 몰랐다. 최고의 연주를 들려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다른 관객도 “악기가 필요없어져 이동시키는 줄 알았는데 찢어진거였다니 정말 놀랍다”고 감탄했다.
팀파니 파손 사실을 알았다는 어느 관객은 “갑자기 팀파니 소리가 다소 이상해진 느낌이 들었는데 급히 튜닝해 3개로 무사히 마무리하는 내공에 감탄했다”면서 “팀파니는 찢어졌지만 이원석 수석님은 공연을 찢었다”고 극찬했다.
이 수석은 인터뷰 말미에서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고 기억에 남을 무대였다”며 밝게 웃어보였다.
한편 팀파니의 헤드는 송아지나 염소의 가죽으로 만들기도 하나,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용이 저렴한 플라스틱 필름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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