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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세운 美 SVB… 파산은 겨우 36시간 걸려 [뉴스+]

, 이슈팀

입력 : 2023-03-13 10:04:38 수정 : 2023-03-13 15: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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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 초고속 붕괴’…겁먹은 고객들 스마트폰으로 ‘패닉 뱅크런’
위기 전염 막아라…美 정부, 회사 매각 착수 등 주말 사이 긴급 대응
SVB, 폐쇄 수 시간 전 직원들 보너스 지급…CEO 지분매각도 논란

1983년 문을 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스타트업 업계의 주요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기까지 40여년 걸렸지만, 붕괴하는 데는 단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예금주에 저금리를 주고 단기 자금을 끌어모아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였던 SVB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위기설’이 돌자 ‘패닉 뱅크런’이 시작됐고, 순식간에 신규 자금이 막히면서 파산으로 이어졌다.

사진=AFP연합뉴스

◆SNS와 스마트폰이 일조한 초고속 붕괴 

 

일각에서는 이같은 초고속 파산 배경으로 SNS 뉴스 확산과 스타트업 경영자들의 ‘발작적인 반응’을 꼽는다. 실제로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지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소식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겁에 질린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자신의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고 숫자를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뱅크런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9일(현지시간) 파산 전날 SVB는 최근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어쩔 수 없이 매각,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뱅크런의 도화선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 은행들이 파생상품 등 위험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파산했던 것과 달리 이번 SVB 사태는 금융기관의 핵심 자본인 보유 예금과 자산의 가치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괴리된 데 따른 것으로, 실질적으로 2008년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회사 측의 발표 직후인 지난 9일 증시에서 SVB 주가가 폭락했고, 특히 미 서부 시간으로 오전 10시30분쯤 스타트업에서 많이 쓰는 사무용 메신저 슬랙에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뱅크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SVB의 악재는 최근 가상화폐 거래은행 실버게이트 청산 등 실리콘밸리에 불어닥친 흉흉한 소식들과 맞물려 이 지역에서 더 발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WSJ은 설명했다. 예금주들은 당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420억달러(약 55조6000억원)를 인출하려 시도해 SVB의 현금 잔고는 ‘-9억5800만달러’를 기록,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 캣’의 설립자 맥스 조는 지난 9일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열린 창업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을 때 “동료 창업자들이 SVB 은행에서 회사 자금을 빼내기 위해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엔도르 랩스의 최고경영자 버룬 바드와르는 “이것이 과잉반응처럼 보이긴 하지만, 수익성이 나지 않는 스타트업들은 회사 운영을 이 예치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위기 전염될라…美 정부 긴박한 움직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말 동안 긴박하게 움직였다. 특수한 사례인 SVB 문제가 15년 전 금융위기처럼 전방위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리스크에 불을 붙여 연쇄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 직접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통화해 대응책을 논의했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12일 CBS 인터뷰에서 “주말 내내 은행 규제당국과 함께 이번 사태에 대응할 적절한 정책을 고안하기 위해 협력했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 하원의장도 바이든 행정부와 이 문제를 긴박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월요일인 13일 SVB의 주요 고객들인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현금을 찾지 못해 ‘패닉’이 초래될 가능성에 대비해 파산관재인으로 지정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전날 밤부터 이 은행 자산 경매 절차에 착수했다. 신속한 자산 경매가 중요한 이유는 SVB 고객 대부분이 FDIC의 예금보험 한도액 25만달러가 넘는 금액을 이 은행에 예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자산을 신속히 매각해야 스타트업 고객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기 전 최대한 많은 예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예금을 빨리 돌려받지 못해 직원 월급을 미지급하고 도산한다는 뉴스가 언론에 도배될 경우 과도한 위기감이 시장 전반으로 전염돼 멀쩡한 다른 중소 규모 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가장 경계하고 있다. 옐런 장관이 인터뷰에서 “한 은행에 존재하는 문제가 건전한 다른 은행들로 전염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정부는 12일 폐쇄된 실리콘밸리은행(SVB)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 없이 전액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모든 예금주는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으며 SVB의 손실과 관련해 납세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없을 것이라고 재무부는 밝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앞에서 MSNBC 방송 기자가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폐쇄 직전 보너스 파티…회장은 지분매각 논란

 

한편 SVB가 폐쇄 직전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분매각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도 논란으로 떠올랐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SVB는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의 폐쇄 결정이 내려지기 불과 몇시간 전 직원들에게 연간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번에 직원들이 받은 보너스는 작년 한 해 동안 이뤄진 업무에 대한 것이다. 악시오스는 애초 보너스 지급 일정이 이날로 예정돼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관재인으로 지정된 날짜와 일치했다고 꼬집었다. 다른 일부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일은 이달 말로 잡혀있던 상태로 전해졌다.

 

이날 지급된 보너스가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이 회사의 보너스는 사원부터 임원까지 1만2000~14만달러(약 1590만~1억8500만원)까지 다양하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8년 SVB는 상장된 은행 중 가장 높은 봉급을 주는 회사로 꼽혔는데, 그해 평균 봉급은 25만달러(3억3000만원)에 달했다.

 

앞서 SVB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그레그 베커가 지난달 27일 모회사인 SVB 파이낸셜의 지분 1만2451주(약 360만달러·47억6000만원)를 매각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베커 회장이 지분 매도 계획을 금융당국에 보고한 1월26일 당시 SVB의 자본조달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내부자 거래’에 해당하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SVB가 채권 매각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20억달러 이상의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 조달에 나선다는 내용의 서한을 주주들에게 보낸 것을 계기로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이것이 곧 파산 사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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