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따로 없어… 어리다고 미루면 안 돼
내 아이 ‘연진이’처럼 키우지 않으려면
부모 흥분 자제 등 감정조절 주의해야
폭력적 대응 되레 아이가 모방할 수도
가장 중요한 한두개 ‘우선순위’ 정해 집중
분노·짜증 등 감정 표현법도 가르쳐야
원인 알게 되면 소통 통해 문제해결 가능
“공격적인 아이가 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어떤 기질인지도 중요하겠지만, 가정 내 훈육 방식, 좌절 등 사회적 경험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훈육 시작 시기는 ‘OO개월 이상’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갓 돌이 지난 아기도 엄마가 ‘지지’라고 말하면 알아들어요. 18개월 아이가 아빠를 깨물었을 때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가르치자’고 미룰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네가 깨물면 다른 사람은 아프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라고 딱 한 문장으로 알려줘야죠. 딱 그만큼의 짧고 간결한 훈육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연령이 올라가면 그에 맞는 훈육으로 발전해가야 하고요.”
최근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흥행 이후 많은 부모가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도 신경 쓰는 분위기가 된 상황이다.

부모도, 아이를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훈육이 좋은지 헷갈리는 부모도 많다. 규율을 중시하다가 아이의 자존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다가 질질 끌려다니는 경우도 많은 탓이다. ‘어떻게 훈육해야 할까’는 질문은 모든 부모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적절한 훈육 시기와 방법에 ‘훈육 우선순위 정하기’와 ‘감정 표현하는 법 가르치기’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더 글로리’에서 보면 연진이 엄마가 ‘그런 애 하나 정리 못 하냐’는 식으로 얘기한다.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격적인 기질이 있는 아이를 ‘강화’할 수도, 조절할 수도 있다”고 훈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가 공격성을 보이면 그 순간부터 조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 부모의 훈육은 아이의 기질과 관계없이 아이가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첫 관문이 되어준다.
훈육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부모의 감정 조절이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나쁜 행동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흥분하거나 과도하게 화를 내게 되면 아이는 문제 행동 자체보다 부모의 태도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고 학습하기 때문에 이런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다.
김 교수의 환자 중에도 아이가 어렸을 때 아파서 혼내지 않은 집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허용해주자 아이는 집단생활을 어려워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힘들어하자 부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가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책상을 엎거나 욕을 하고 침을 뱉는 행동이 계속돼 학교에서도 난색을 표했다. 결국 병원을 방문한 부모는 아이를 올바로 훈육하는 방법을 배웠고, 조금씩 행동이 수정됐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울고 떼를 써서 10만원 선물을 얻어내면, 그다음에도 더 많이 울고 떼써서 20만원, 40만원, 100만원 선물을 얻어내려고 하죠. 그런데 이게 아이들에게도 힘든 겁니다. 애들도 경계가 있는 게 편해요. 난리를 치면 가능하니, 강도를 높여가면서 점점 힘들죠.”
많은 부모가 ‘허용적 부모’와 ‘통제적 부모’를 놓고 저울질하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바람직한 모습인 것은 아니다. ‘중용의 미’가 필요한데, 문제는 중용이 가장 어렵다는 점이다.
“허용적 부모와 통제적 부모 어느 한쪽이 나은 게 아닙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서 단호하게 고쳐주되, 너무 많은 것에 대해 단호하면 안 됩니다. 당장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고 다니는데, 빨래통에 양말 넣으라는 문제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단호하면 효과가 떨어지죠. 저는 ‘우선순위’를 두라고 얘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한두 가지에 집중하고, 이후에 교정이 되면 다음 순위로 넘어가야죠.”
분노, 짜증, 슬픔,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분노라는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 감정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홀하게 대해서 화가 났다’는 말을 예로 보면, 그 기저에는 서운함이 있죠. 그걸 말로 하면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고, 남에게 표현하면서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함을 배움과 동시에 그 감정을 해소할 아이만의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크게 호흡하기, 숫자 세기, 음악 듣기, 달리기 등 감정을 조절할 아이만의 방법을 찾아 꾸준히 훈련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더 글로리’ 연진의 공격성은 부모와 학교 선생님 등 가족·사회를 통해서 계속 강화되죠. 이 중 한 단계에서라도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고칠 기회가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겠죠. 가끔 부모가 노력해도 조절이 안 되고, 행동이 계속 심해질 때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반항성 도전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평가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