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적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는 반격능력 확보를 위한 일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서와 국가방위전략서, 방위력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기간 이어졌던 전수방위(상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최소한의 방위력을 행사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미사일 등 반격능력 확보를 포함한 군사행동 확대를 추진하는 방안이 담겼다.
일본의 반격능력은 한국, 미국, 대만 등의 안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 및 중국과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사안이 될 전망이다.

◆‘미군은 창, 자위대는 방패’ 개념 변화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안보정책의 핵심인 미·일 동맹은 미군이 창, 자위대가 방패 역할을 맡도록 구분되어 있었다.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미군이 보복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적 미사일 기지 등을 파괴하는 반격능력 보유를 결정하면서 자위대도 타격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일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앞으로는 미국의 타격력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반격능력 운용에 대해서도 일본과 미국이 협력해 대처한다”고 밝혔다.
반격능력은 일본 내에서 2000년대부터 거론됐던 적기지 공격능력 개념을 확장한 형태다. 적기지 공격능력은 적의 미사일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해당 미사일 기지를 타격하는 형태였다.
1990년대 초 제1차 북핵 위기가 발발하자 일본 항공자위대가 1994년 미군에서 표적 정보와 전자전 능력을 지원받는 상황을 가정하고 F-4EJ, F-1 전투기로 북한 연안에 가까운 미사일 기지를 공습하는 시뮬레이션을 내부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질적 차원에서 효과를 거두기에는 제약이 많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2000년대부터 적기지 공격능력 확보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선제공격 논란과 맞물리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햇다.
기시다 정부가 내세우는 반격능력은 과거의 논란과 제약을 고려해 미사일 기지 외에도 이동식발사차량(TEL), 전쟁 지휘시설, 통신기지 등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여기에 “최소한의 자위적 조치로 행사하므로 전수방위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인 선제공격 논란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이 갖추려는 반격능력의 핵심은 장거리 미사일이다. 사거리 1000㎞ 이상의 미사일을 대량으로 배치해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기지를 유사시 타격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탄도·순항미사일로 북한 위협을 억제하는 한국군 킬 체인과 유사한 ‘일본판 킬 체인’인 셈이다.
우선 사거리가 1250㎞가 넘는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최대 400발 구매, 2027년까지 실전배치할 계획이다.

자국산 유도무기가 완전히 전력화될 때까지 일본 반격능력의 핵심 장비로 쓰일 토마호크는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의 수직발사대 등에 탑재되어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토마호크 탑재 이지스함이 동해에 출현하면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넣게 된다. 동중국해에서는 중국 동부 타격이 가능하다. 항공기와 미사일 추적 및 요격 기능에 장거리 공격력까지 갖춘 이지스함은 일본에 강력한 전략적 억제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2식 지대함미사일 사거리를 200㎞에서 1000㎞까지 연장하고, 함정과 전투기에서도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할 방침이다.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를 내는 극초음속 미사일(사거리 3000㎞을 2028년 이후에 실용화하며, 2030년대에는 오키나와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방위를 위해 고속 활공탄(사거리 2000㎞)을 배치한다. 고속 활공탄은 지상 및 잠수함 발사형을 개발한다.
일본의 구상대로라면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르는 일본 전역에 장거리 미사일 1500기가 배치되어 북한·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할 억지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본을 사정권에 두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1900발을 보유한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북극성-2형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과 순항미사일 등을 갖춘 북한의 공격에 맞설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한·미의 공격력에 더해 일본의 미사일이 날아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일본은 미사일 증강 외에도 통합방공미사일방어(IAMD)체계를 구축, 해상자위대 이지스함과 육상자위대 지대공미사일의 요격능력을 강화한다. 소모전 양상을 띠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반영해 탄약과 미사일, 연료 구매를 늘린다.
일본의 반격능력 확보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공세적인 군사력 운용 등과 맞물려 한층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격능력 보유는 일본 헌법과 전수방위 규범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본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환영”, 한국은 갈등 소지도
미국은 일본의 반격능력 확보를 환영하는 모양새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미사일 전력을 구축하면, 주일미군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반면 중국과 북한에 대한 미·일 동맹의 억지력은 미국의 투자 없이도 강화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방위력과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대담한 리더십에 찬사를 보낸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지난 1월 미·일 외교·국방(2+2) 장관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의 방위력 강화 시도는 동맹의 억지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은 이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막으면서 자체적인 반격능력 확보를 추진하고, 미국이 이를 지지함에 따라 자위대의 전력 구조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같은 상황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일본을 탄도미사일 등으로 공격하려 하거나 주일미군이 북한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이 미사일을 동원해 대북 공격에 나설 위험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 군과 정부는 “일본이 북한을 공격하려면 한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이 한국의 입장을 따르지 않고 독자 행동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국 영역에 포함되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활동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15년 10월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일본 측은 자위대가 한국 영역에 진입할 때 한국의 동의를 받는 것과 관련, “한국의 지배가 유효한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같은 상황은 일본이 반격능력을 활용하려 할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북한을 상대로 일본이 반격능력 사용을 시도할 때, 북한이 한국 영역에 포함되는지와 공격 여부를 두고 한국과 미국, 일본의 판단이 다르다면 3국간 갈등과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얼마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조정 능력이 포함된 한·미·일 협력체제 안에서 한반도 유사시 3국의 역할과 논의 과정 등을 사전에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정부와 군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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