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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문해력] 많이 알고 잘 골라 써야 진짜 어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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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3 22:41:58 수정 : 2023-03-03 22: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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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배울 때 ‘make’ 때문에 고생했었다. ‘have’도 그랬다. 우리말로 ‘만들다’, ‘가지다’라는데 그 뜻만으로는 영어 지문 태반을 해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힐 때마다 사전을 뒤적였다. 오랜만에 펼친 영어사전엔 ‘make’의 여섯째, 열셋째, 스물둘째 뜻에 그은 형광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기본적인 어휘만 잘 활용해도 영어를 어지간히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국어사전에서 ‘하다’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얼마나 다양한 뜻과 용법이 있는지 헤아려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하다’는 45가지의 뜻갈래로 나누어 설명되어 있다. 각 뜻갈래마다 어떤 말과 함께 쓰이는지, 어떤 형태로 쓰이는지, 띄어 쓰는지 붙여 쓰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사전을 보면 “내가 ‘하다’를 반만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휘력을 높이려면 이런 기초적인 어휘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부터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이 읽고 써 봐야 하겠지만, 여기에 더해서 아는 말도,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말도 사전에서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면 효과는 배가 된다.

물론 아는 어휘가 많을수록 좋다. 상황에 딱 들어맞는 어휘를 쓰려면 머릿속에 든 어휘가 많아야 하는데, 이런 능력을 키우는 데도 사전만 한 것이 없다. 어휘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가며 익히는 것이 효과적인데, 사전은 이런 학습 방식에 딱 맞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춘부장’을 찾으면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반대말은 ‘자당’, 참고할 말로 ‘가친, 선친’ 등이 제시되어 있다. 다시 검색하면 ‘자당’은 남의 어머니를, ‘가친’은 남에게 자기 아버지를, ‘선친’은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계속 꼬리를 물면 그만큼 호칭·지칭어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햇빛’과 ‘햇볕’, ‘굵다’와 ‘두껍다’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때도 사전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어휘력이 중요할까? 소통을 잘하기 위함이다. 소통은 배려에서 시작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말을 잘 골라 써야 한다.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 남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말, 자기 할 말만 하는 것은 속 빈 어휘력이다. 더 쉽고 정확한 표현을 찾아 애쓰는 태도가 진짜 어휘력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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