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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가·높은 리스크·저출산 ‘삼중고’… 전공의 씨 말랐다 [심층기획-붕괴 위기 필수의료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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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1 06:00:00 수정 : 2023-03-02 2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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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고사 위기 소아·산부인과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 40여명뿐
수련 2~3년 더 필요한데 보상은 적어
기피 현상→인력난→업무 가중 악순환
소아암 의사 67명… 25% 5년 내 정년
지방 환자 수도권으로 원정 항암치료

정부 소아 의료 개선책 실효 의문
24시간 센터·소아암 거점병원 육성안
인력난 파격적 해결책 없이는 공염불
“올해가 바닥 친 지원율 살릴 골든타임”
동네 병·의원 생태계 복원 등 속도 주문

“같은 질병이라도 ‘소아’라는 말이 붙으면 진료·수술에서 시간과 비용, 준비과정이 모두 2배 이상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도 수련 과정에 2∼3년이 더 소요되죠. 항의도 2배로 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는 ‘소아’라는 말이 붙으면 근무 환경, 수가, 보상 등 모든 것이 마이너스가 됩니다. ‘소아 디스카운트’라고나 할까요. 아이가 좋다는 이유로 지원한 의료진도 당직으로 36시간, 48시간 근무가 이어져 ‘번아웃’이 오면 관두는 경우가 많습니다.”(서울 한 대학병원 A 교수)

 

최근 몇 년 새 가속화한 저출생 여파로 소아청소년과 진료 인프라가 붕괴 직전에 놓였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가천의대 길병원의 소아응급실 입원 중단 사태 이후 ‘필수의료 기본대책’에 이어 최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내놨다. 특히 지난 22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확충,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소아 진료 강화,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 등이 주요 내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소아 의료 정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높다. 야간·휴일 ‘진료 강화’를 위해 센터를,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지방 거점병원 육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곳에 갈 의료진이 없다는 것이다. 소아 진료는 현재 “의료진을 갈아 넣어 겨우 돌아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극한에 내몰린 상황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기피현상이 인력난으로, 업무 가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기피과목 인재 육성이 우선돼야”

 

소아 응급·중증 진료를 맡은 소아외과·소아암이 대표적이다. 소아외과는 횡격막 탈장, 식도나 항문이 없이 태어나는 신생아 기형부터 자석·못 등을 삼켜서 장천공이 생기거나 장중첩이 된 응급 환자를 담당한다. 하지만 전국에 활동 중인 소아외과 전문의는 겨우 40여명. 애초 소아외과는 외과 과정 3년 후 추가로 2∼3년 소아 분과 ‘펠로십’을 거치는 만큼 지원자가 턱없이 모자란다. 열악한 현실 탓에 몇 년 새 5명이 진료 분야를 변경했다. 여기에다 향후 10년 이내 8명이 정년 퇴임할 예정이다.

 

낮은 수가 때문에 소아외과는 수익 여부가 주요 관심사인 병원 입장에선 늘 ‘불효자’였고, 수술 횟수도 적다 보니 병원이 “다른 역할도 해보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전문의를 목전에 둔 전공의 입장에서는 진료과목 선배를 통해 자신의 암담한 미래가 뻔히 보이는 셈이다. 남궁정만 대한소아외과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소아외과 인력 공급은 1년에 겨우 1∼2명으로 최악인 수준”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남궁 교수는 “지방에는 전남처럼 도 전체에서 소아외과 의사가 1명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한 달 6∼7번의 당직에, 365일 ‘온콜’ 상태다. 게다가 혼자서 일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단순히 수가가 오르고, 급여가 높아진다고 달라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력 보강으로 최소한의 휴일이 보장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암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방에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의료계에서 갈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아암 진료의사는 전국에 67명. 이 중 25%가 5년 내 정년을 맞이한다. 최근 몇 년간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소아암 전문의가 공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36시간씩 연속 근무하는 환경이 좋아질 리 없고, 이로 인한 ‘인력난의 악순환’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의료진 부족은 환자들의 치료 환경도 위협한다.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최소 2, 3년 소요되는 항암치료를 위해 ‘원정치료’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외 지역 거주자 중 70%는 수도권에서 치료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 살 여아가 KTX로 하루 6∼7시간 거리를 8주 동안 통근 치료를 하는가 하면, 병원 앞 쉼터는 이런 어린이 환자 가족이 장기간 모여 지내야 하는 숙소가 된 지 오래다. 부부가 떨어져 한 명은 생계를 책임 지고 다른 한 명은 자녀 간호를 담당하다 보니 치료비와 주거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가족공동체가 붕괴하는 사례도 많다.

 

◆올해가 소아과 골든타임… “내년 전공의 모집 전 비전 나와야”

 

의료진도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김혜리 교수는 “(원정진료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특정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가 다른 병원에서도 진료할 방법을 정책과제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학회 내에서도 ‘계속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파격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만큼 절박하다”고 전했다.

 

소아의료 분야의 ‘선순환 생태계 복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들은 잠재적인 ‘개원의’인 만큼 동네 병·의원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대형 ‘소아 전문병원’이라는 것만으로는 이들에게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암센터에서 항암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소아암 환아와 부모가 전문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의료계는 정부의 이번 필수의료 지원 대책 발표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좀더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1∼4년 차 전공의가 1명도 없는 곳이 수련 병원의 20% 수준인데 올해 마지막 4년 차 전공의마저 나가버리게 되면 이 비율이 2∼3배로 치솟을 전망이다. 소아청소년과 마지막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골든타임’이 올해라는 얘기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의료계에선 대통령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명확한 목표 수준을 제시한 만큼 어떻게든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다만, 이제는 시간이 너무 없다”고 우려했다. 김 이사장은 “전공의들이 오는 9월 진료과목 지원을 결정하기 전 소아과에 대한 어떠한 ‘변화’ 기류를 체감하지 못해 또다시 소아과 지원율이 바닥을 치게 되면 그때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수·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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