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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 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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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24 22:34:46 수정 : 2023-02-24 22: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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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말·행위에 슬픔·오해 녹여
내일의 가능성 품고 있어 희망적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에 수록,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내 인생 단편소설들이 있는데 어떤 작품은 내용 때문에 어떤 소설은 제목 때문에 그렇다. 개인적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두 경우 모두에 속하고 앞으로 이 단편을 접할 독자에게도 그렇게 되리라 믿고 싶다. 작품과 상관없이, 종종 타인과 나 자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누구를 위한 일이든, 별것 아니어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하는 행위는 아무래도 긍정적이며 내일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이 대체로 그러하듯.

조경란 소설가

토요일에 앤은 빵집에 가서 이틀 후 여덟 살이 되는 아들 스코티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다.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주인은 친절하진 않지만 “그녀가 마음껏 얘기하도록 내버려뒀다”. 나는 아마 이 단편을 서른 번도 넘게 읽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녀가 마음껏 얘기하도록 내버려뒀다는 문장을 오래 보았고 그 이유를 결말에서 더 알게 되었다. 아무튼 다시 소설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월요일 아침에 앤은 케이크를 찾으러 갈 수 없었다. 등교하던 스코티가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딘 순간 자동차가 아이를 치었고 운전자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스코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병원에서 아이 곁을 지키느라 처음에는 남편이, 그다음에는 앤이 필요한 짐을 챙기기 위해 차례대로 집에 잠깐씩 들른다.

아내가 케이크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편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거두절미한 채 “케이크 왜 안 가져가는 거요?”라는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깨어나지 않아 두려움에 휩싸인 앤이 밤에 집에 들렀을 때 걸려온 전화. “스코티 일은 잊어버리셨소?” 애써 만든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자 빵집 주인은 화가 나 있었고 앤은 그 전화가 그가 한 거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오해는 이렇게 번졌다. 부부에게는 두개골이 골절되었다는 아들이 깨어나지 않는데 누군가 아들 이름을 운운하면서 장난전화를 거는 것으로,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의 아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를 모르는 빵집 주인에게는 손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스코티는 깨어나지 못했다. 부부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방법을 아직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또 전화를 받았고 그제야 앤은 빵집 주인과 생일 케이크를 떠올린다. 아들이 죽었는데 생일 케이크라니, 그걸 찾아가지 않는다고 전화를 걸어대는 남자라니. 분노한 부부는 한밤중에 차를 몰고 빵집으로 찾아간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주인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의자를 내주었다. “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빵집 주인이 따뜻한 계피 롤빵을 가져왔고 그들은 빵을 먹으며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의 사연을 듣고 이야기하는 동안 닫힌 마음들이 허물어져 버린다. 고독한 빵집 주인은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먹을 걸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부부는 이 크나큰 슬픔을 털어놓을 데를 몰랐다. 그들은 빵과 커피를 마시며 아침 햇살이 비칠 때까지 따뜻하며 고소한 빵 냄새가 풍기는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전에 레이먼드 카버는 자신의 작품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편이 살아남는다면 정말 행복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카버의 소설을 거듭 읽는 이유는 이웃과 인생을 보는 눈이 미묘하게 달라져서이다.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고.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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