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유명 역할수행게임(RPG)을 오랜 기간 즐겨온 마니아다. 그는 게임 캐릭터 장비에 추가적인 성능을 무작위로 부여하는 유료 아이템을 구매해왔다. 유용한 성능이 상대적으로 덜 부여된다고 느껴졌지만, ‘무작위’라는 설명을 읽고 “내가 운이 없나 보다”라고 아쉬워할 뿐이었다.
A씨 사례는 RPG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들어보았을 사례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우연적 요소)에 따라 종류·효과·성능이 결정되는 아이템으로, 200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한 후 게임사들의 주요 수익모델이 되어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신이 구매하는 아이템의 정확한 확률정보를 알고 싶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십수 년 누적된 불만은 결국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뜨거운 이슈는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게임사의 정보공개의무를 규정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 것이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를 도입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지난달 3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된 이후 지난 16일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하며 9부 능선을 넘었고, 이제 국회 본회의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첫 법·제도적 조치라는 의미를 가진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법리적 관점에 비추어보면, 먼저 공정거래 및 소비자(게임 이용자) 권리 보호 관점에서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의무화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공정거래 이념과 소비자 권리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소비자의 알 권리 측면에서, 게임 이용자가 구매하려는 상품에 해당하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그 구성 확률은 소비자의 구매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보로서 마땅히 소비자가 알 수 있어야 하는 정보인 바, 이번 개정안을 통해 게임이용자 권리가 입법적으로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확률정보 공개는 사행성 완화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용자가 현금 등을 투입하여 해당 아이템을 구매하는 경우, ‘임의의 확률’이라는 우연적인 방법에 따라 어떠한 결과물(아이템)을 획득할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현행법상 ‘사행성’의 요건 중 ‘우연성’과 ‘유상성(이용자의 재산상 손실)’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현재 대부분의 확률형 아이템이 아이템 거래 중개사이트에서 유상으로 거래되고 있어, 사행성의 나머지 요건인 ‘재산상 이익의 발생’ 또한 충족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경우, 소비자는 사전에 특정 결과가 발생할 확률을 알 수 있기에 스스로 자제심을 형성하거나 적절한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으며 이는 곧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우려를 불식시킬 유의미한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게임사에서 우려하는 ‘기술적 실수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나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 등의 주장은 기술적 오류에 대한 면책조항과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제도 도입 등 입법기술적 혹은 정책적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문제라 생각한다. 국내 게임사들이 가진 뛰어난 역량과 노하우를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주가 상승이 아닌 게임성에 더 쏟을 수 있다면, K게임은 이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 규모에 걸맞게 K팝, K드라마, K영화 등 여타 K컬처와 함께 국제시장에 우뚝 설 것이다. K게임의 재도약과 함께,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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