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일방적 승리 예상 깨고 장기화
러, 자포리자 원전 점령… 핵공격 위협
다수 원전 보유한 한국 자유롭지 않아
드론 맹활약… 사이버 공간 심리전 치열
北, 최근 서울 상공에 소형무인기 침투
사이버전력 증강… 공격적 활용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4일로 1년을 맞이한다. 단기간 내 러시아가 일방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전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냉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 벌어진 대규모 전면전이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안보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핵무기 사용 및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위협, 드론 활용, 가짜뉴스 등은 한반도 유사시 한·미가 직면할 수 있는 문제다.

◆수십년 지켜졌던 비확산 기조 흔들릴 위험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시절부터 유지됐던 핵 비확산 기조를 뒤흔들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고 원전을 위협했다. 바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지난달 22일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핵보유국이 과거에 지역적 분쟁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전쟁 기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함으로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핵 비확산 규범을 위협했다. 자포리자 원전과 그 주변에서 포격과 군사활동이 끊이지 않고,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이 파괴되는 일이 속출하며 ‘방사능 유출을 비롯한 대형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우크라이나도 이에 맞서 자체적 화생방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등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런 문제에서 한국 또한 자유롭지 않다. 다수의 원전을 가동하는 한국 입장에서 유사시 북한군에 의해 원전 안전이 위협받거나 군사작전에 이용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이는 국가적 안보 위협이자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체제 안정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소속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내 원전에 파견돼 보안점검을 한 것처럼 한국도 유사시 국제사회와 연계·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새로 주목받는 디지털 인지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평가된다. 인지전이란 디지털 기기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바꾸는 일종의 심리전이다. 여론조작, 가짜뉴스, 선동, 혐오를 확산해 상대국 국민이 저항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러시아는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허위 정보를 온라인에 퍼뜨리고 해킹을 감행했다. 전쟁 개시 한 달 전인 지난해 1월에는 1000건 이상의 거짓 폭탄 테러 신고가 접수됐다. 러시아 관영TV는 “우크라이나의 침략에 맞서야 한다. 네오나치로부터 우크라이나 국민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송출한다.
러시아의 이 같은 전술은 우크라이나의 역(逆)인지전에 가로막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전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2월25일 인터넷 화상연설을 통해 “대통령이 여기(키이우)에 있다. 우리(대통령 참모진) 모두 여기 있다”며 항전 의지를 밝혔다. 러시아가 유포한 거짓 정보를 반박하며 항전 의지를 밝힌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은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의 사기를 높이며 전쟁 판도를 바꿨다.
이때부터 본격화한 우크라이나의 인지전은 사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리며 국제사회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부터 일선 부대원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전쟁 상황을 세세하게 알렸다. 전 세계에 있는 사이버 의용군은 러시아 인터넷을 해킹하거나 러시아 국민에게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인지전은 한반도 유사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6800여명의 사이버전 인력을 운영하면서 최신 기술의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등 사이버전력 증강에 힘쓰고 있다. 이들이 온라인과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허위 정보를 퍼뜨려 혼란을 초래한다면, 전쟁 수행은 불가능해진다. 군 관계자는 “가장 확실한 대책은 팩트(사실)를 앞세우는 것”이라며 인지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드론 위협 부각 우크라·韓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무인기) 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드론이 널리 쓰인다.
전쟁 초반 우크라이나군은 튀르키예에서 도입한 바이락타르 무인공격기를 앞세워 러시아군 기계화부대를 공격했다. 키이우로 진격하던 러시아군은 하늘에서 날아온 바이락타르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 국가와 민간에서 지원한 민수용 드론도 투입, 러시아군 동향을 정찰하거나 폭격을 가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군 소부대의 활동 반경을 넓혔고, 포병의 포격 정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러시아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란에서 샤헤드-136 자폭 드론을 대량으로 도입,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샤헤드-136은 ‘하늘의 스쿠터’라 불릴 정도로 시끄럽고 속도가 느리지만, 제작비가 저렴해 많은 수량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상공에 소형 무인기를 침투시킨 북한도 우크라이나 또는 러시아처럼 드론을 더욱 공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분대 단위에서 드론을 사용하며 전장을 파악한다”며 “드론으로 전장을 정찰하면 적의 움직임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맞게 미사일을 쏘거나 장사정포를 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양 위원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을 보면서 드론의 공격적 사용 기조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드론에서 미사일을 운용하는 것이 북한 자체 개발로는 단기간 내 쉽지 않겠지만, 중국 기술이나 이란산 드론 반입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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