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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융의 환자와 통도사 수중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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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19 23:32:09 수정 : 2023-02-19 23: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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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신경증 앓던 융의 환자
유대교의 ‘뿌리’ 찾으며 안정
옻칠 연못속 ‘반구대 암각화’
천변만화 속 영원성 표현해

젊은 나이에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는 지적인 여성이 있었다. 스타일까지 좋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융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눈이 반응하는 것을 본다. 할아버지는 존경받는 유대교 랍비였단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미 유대교를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유대교 전통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현대여성답게 연애와 의상, 성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그럭저럭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불안은 그것이 그녀의 길이 아님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융과의 인연으로 유대교 전통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융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녀 안에 있는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관념들을 불러일으켜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되고 신경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마 전 영축산 통도사에 들었을 때 불쑥 융의 자서전 속 저 여인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무의식은 짧은 이 여행을 품 넓은 전통을 만나는 시간이라 느낀 것 같다. 전통을 떠나 새로운 전통을 만들거나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는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득, 뿌리를 돌아보고 알아보는 시간은 찾아오는 것 같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양산 영축산은 넓고 깊어 하루 종일 걸어도 좋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무수한 카메라의 세례를 받고 있는 한 나무 앞에 섰다. 봄소식을 알려주는 자장매란다. 646년 통도사를 세운 스님, 평생 문수보살 친견을 염원했던 자장스님의 이름이 붙은 꽃, 그 홍매화가 꽃을 피우면 봄의 시작이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생각 없이 찾아와 무심히 만난 꽃으로 인해 괜히 기분이 좋다.

또 걷다 보니 서운암 장경각이다. 넓디넓은 영축산의 품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여기 장경각은 대장경을 목판이 아닌 도자기로 구워 보관한, 경전의 집이다. 지금 종정이신 성파스님이 직접 구웠는데 도자기 굽는 데만 10년이 걸렸단다. 그 서원의 공간을, 합장을 하고 천천히 걷다 보면 오롯이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장경각을 나와 눈을 들면 넓디넓은 마당에 놀랄 만한 전시가 펼쳐진다. 물속 전시장, 연못이다. 맑디맑은 물 아래에 검디검은 바닥, 그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림이 시선을 끈다. 작품명은 ‘나전칠기 반구대 암각화’, 바로 종정이신 성파스님 작품이다. 스님은 연못 바닥에 옻칠을 해 본래 자리를 삼고, 거기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그려 넣었다. 보기에도 품격 있는 이 화려한 전시가 어찌 선사시대 암각화를 재현했다는 의미뿐이겠는가.

금강경에 나오는 강렬한 문장이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다.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는 뜻이다. 열흘 붉은 꽃 없고 10년 가는 권세가 없으니 개시허망이지만, 그러니 막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쓸고 가는 무상한 세월을 마음 깊이 새기는가, 거기서 네가 본 것은 너를 어디로 인도하는가,를 묻는 것일 것이다.

성파스님 말씀이 옻은 영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물질이란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나무그릇이 썩지 않은 이유도 바로 옻칠 때문이다. 검디검은 그 색은 모든 것을 합한 색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를 빛나게 하는 색이다. 선사시대 암각화처럼 존재하는 것들은 다양한 이야기로 서로 얽히고 충돌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천만 가지의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일어나는 바탕 자리엔 실로 어떤 이야기도 없다. 다양한 운명이 놀다 가는 텅 빈 자리, 그러나 다양한 운명을 놀게 하는 품 넓은 자리, 우리 마음에도 그 자리가 있다. 스님이 옻칠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자리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동안거 해제 때 스님이 내리신 법어가 보인다. “본래 부처 자리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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