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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軍 전략요충 놓고 돈바스 대회전…전쟁판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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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13 07:01:00 수정 : 2023-02-20 03: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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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 1년] ① 해를 넘긴 전쟁, 그 후과와 전황은?

푸틴, 개전 초기 특별군사작전에서 이젠 ‘조국수호전쟁’ 전환
3번의 변곡점…러 우위→러 퇴각 →합병 4개주 놓고 장기전
러 침공군사령관 교체, 문책보단 지휘권 등 전열 재정비 성격

“지난해 9월30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주 합병 선언 후 전쟁의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 언급했던 특별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에서 조국수호전쟁으로의 전환입니다.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현재 시가전에서 인해전술까지 아우르는 모든 형태의 전투방식이 총동원되어 양측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 큰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만 전쟁의 종식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러시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2월24일)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현재 전쟁의 성격이 푸틴 대통령이 개전 초기 말했던 특별군사작전에서 전쟁을 언급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하면서 종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홍 원장은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군은 현재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철로의 교차점 바흐무트와 그 인근 지역을 놓고 건곤일척의 돈바스 대회전(大會戰)을 벌이고 있다”며 “이 곳에서의 결과가 전쟁의 앞날을 전망하는 풍향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유럽을 넘어 한반도, 동아시아를 포함한 지구촌에 충격파를  주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원인과 과정을  되짚어보고 향후 전개 방향을 조망해 본다. 

 

◆ 전후 유럽 최대의 무력 충돌…지구촌 혼돈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레오파르트2 전차가 1일(현지시간)  아우구스트도르프에서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의 시찰을 맞아 기동 화력 시범을 보이고 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레오파르트2 전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뒤 레오파르트2A6 주력 전차의 주요 성능을 점검했다. 아우구스트도르프 =AP연합뉴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 가운데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이번 전쟁은 21세기 문명 세계의 중심인 유럽의 한복판에서 반인륜적 야만과 원시적 폭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미국 합동참모본부 추정치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희생자 수는 20만 명을 웃돈다. 우크라이나군 6만 명, 러시아군 2만여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도 3만 명 이상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무차별 공습과 살인, 학살, 성폭행, 고문 등 비인간적 폭력 행위들이 난무해 풍요의 땅 우크라이나 영토는 피로 물들면서 뭉크의 절규처럼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16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이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조국을 등져야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Russo─Ukrainian War)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War in Ukraine)으로 표현한다. 남북한 사이의 내전이 국제전으로 비화한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정부군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 사이의 내전이 확대되어 미·러 등 글로벌 강대국의 군사력과 다중적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국제전 성격을 띤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자 간 전쟁 범주를 넘어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번 전쟁의 영향은 어떤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창궐 와중에 발발했다. 지구촌을 덮친 이 거대한 삼각파도가 글로벌 안보와 세계 경제를 강타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전위에서 전대미문의 충격파를 가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복합 대전환의 거대한 위기를 촉발해 지구촌을 불안과 혼돈의 도가니로 내몬 것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러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국가 그룹이 이항 대립( 二項 對立: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가 이룬 짝)하는 신냉전 구도로의 세계질서 재편, 국제에너지·곡물 가격의 폭등, 글로벌 공급망의 단절과 교란, 국제분업 및 상호의존적 경제체계의 마비, 고삐 풀린 군비경쟁의 격화, 코앞까지 다가온 핵전쟁의 공포 등 부정적 파장의 폭과 깊이가 가히 지정학적 쓰나미에 비견될 만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최대 지각변동을 야기한 분수령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한국 역시 이 지정학적 퍼펙트 스톰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다.”

 

◆ 러, 예상밖 고전…2차대전 후 첫 동원령 

미국전쟁연구소(ISW)가 전하는 2월11일 오전 5시 현재 우크라이나전쟁 전황. 

─전쟁의 진행 과정을 정리하면.

 

“지난해 겨울 끝자락 즈음에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고 급기야 해를 넘겼다. 개전 당시 다수의 전문가는 세계 2위의 핵·재래식 전력을 갖춘 러시아의 군사력이 압도적이어서 전쟁이 쉽게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목전에 펼쳐진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작금의 전황은 전체적으로 서구를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군의 집요한 반격에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형국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예비군 30만 명을 징발하는 전시 부분 동원령을 발동하고 또 지난 1년 사이에 우크라이나 침공군 사령관을 네 차례나 교체한 사실은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푸틴의 전시 동원령 선포는 2차 세계대전 이래 러시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평화협상은 어떻게 됐나.

 

“지구촌의 염원과는 어긋나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물론 개전 초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사이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이 여섯 차례 진행됐지만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3월 29일 튀르키예(터키)의 중재로 이스탄불에서 열린 5차 회담에서는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듯했다.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가 거의 항복 수준의 협상안을 제시하자 러시아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의 주권과 안보를 국제적으로 보장해준다면 크렘린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비핵화 지위 명문화,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 대한 독립 인정, 크림반도의 러시아 병합 수용 가능성 등을 내비친 것이다.”

 

─협상 타결은 왜 이뤄지지 않았나.

 

“악마는 역시 디테일에 있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5차 협상에서 핵심 쟁점에 대해 극적인 가(假)합의에 이르렀지만 이후 세부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노정되었다. 협상의 톤이 달라진 이유는 전황을 봐가며 타협의 조건을 달리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가합의안이 미국의 구상과 배치된다는 점도 있지만, 당시 우크라이나에 상대적으로 조금씩 유리하게 전개되는 전세도 한몫했다. 협상 타결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4월 20일 러시아는 자국의 요구와 제안을 담은 새 협상안을 우크라이나 측에 최후 통첩했지만, 젤렌스키 정부의 수용 거부로 협상의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이후 양측은 대규모 인적·물적 손실을 보면서 한 치 양보 없는 치열한 교전을 계속하고 있다.”

 

◆ 세번의 변곡점…1단계 러 우위 전면침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옥탸브리스키 목재산업단지에서 목재산업발전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옥탸브리스키 =타스연합뉴스

─전쟁의 전황(戰況)은 어떤가

 

“에너지난에서 비롯된 물가 폭등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현재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이 전쟁의 끝은 언제쯤일까?’일 것이다. 향후 전쟁 종식 가능성과 그 형식 및 시기를 추론해보기 위해서는 우선 양측 간 군사적 대결이 어떤 경로와 양상으로 전개됐는지 압축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 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승기가 전환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크게 세 단계의 변곡점을 거쳐 왔다. 이 변곡점을 찾아 전쟁을 시간순으로 배열·분석하는 작업은 전황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 번째 단계는 지난해 2월 개전 이후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최대 격전지 마리우폴을 장악한 4월까지의 기간으로 러시아가 우위에 선 전면 침공 단계이다. 푸틴의 특별군사작전 개시 명령에 따라 러시아군은 일사불란하게 우크라이나의 북쪽(벨라루스), 동쪽(돈바스), 남쪽(크림반도) 국경을 넘어 수도 키이우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 시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북부 일원과 동부 요충지 하르키우뿐만 아니라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특별군사작전의 최종 목표인 키이우 공략에는 실패했다.”

 

─러시아가 개전초기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 특이했다.

 

“크렘린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 표현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다. 푸틴은 지난해 2월 21일, 침공 직전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역사적 러시아의 일부로서, 존재한 적이 없는 국가성”의 나라로 규정했다. 이런 인식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타국과의 관계가 아니라 러시아 국내문제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크라이나를 역사적·종교적·문화적 동일체로 보고 복속시켜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크렘린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이므로 군사적 발톱을 드러내면서 모스크바와 ‘척’을 지는 키이우의 극우민족주의·신나치주의 정권을 제거하는 작업은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아전인수 격인 궤변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중국의 역사적 일부라는 억지 주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제국주의적 발상인 것이다.”

 

◆ 2단계선 거센 반격에 직면한 러軍 퇴각과 플랜B

북해 연안 루마니아에서 9일(현지시간) 진행된 미군과 프랑스군의 연합훈련 중 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에서 발사된 로켓이 불을 뿜으며 날아가고 있다. 카푸미디아=AP연합뉴스

─전쟁의 두번째 단계는 어떠했나.

 

“2단계는 지난해 5월부터 전세의 풍향이 바뀌어 키이우 정부가 드니프로강 서안의 도시 헤르손을 탈환한 11월 초까지의 기간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반격 단계이다.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파상공세로 군사적 균형이 무너지는 듯했으나 우크라이나가 거센 저항으로 수도 키이우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전황을 바꾼 게임 체인저는 5월 9일 미국 하원의 무기대여법 개정안(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전쟁 물자를 행정절차 없이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게 한 법안) 통과와 6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의 제공이었다.”

 

─미국의 하이마스 제공 의미는.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를 비롯한 장거리 무기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러시아군의 후방 탄약고와 보급로를 연이어 타격했다.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은 탱크무용론을 제기할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러시아군의 기동성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러시아군은 굴욕적인 퇴각을 거듭한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9월 제2의 도시 하르키우와 하르키우주 거의 전체를 탈환한 데 이어 11월 초에는 드니프로강 서안의 헤르손 지역까지 수복하면서 승기를 이어갔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은 어떤 대응을 했나.

 

“키이우 기습 점령과 속전속결 전략이 무위에 그치자 푸틴은 동남부 전선으로 전장을 축소하는 플랜B 전략으로 신속히 전환했다. 플랜B는 크렘린이 역사적 고토(古土)로 간주하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노보로시야(Novorossiya·신러시아) 지역을 확고히 장악해 러시아연방 일부로 합병하는 것이지만, 전략의 요체는 안정적인 방어가 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적의 보급선을 유지하고 인적·물적 자원의 과도한 투입을 줄이면서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의도이다. 크렘린은 9월 30일 우크라이나 침공 뒤 점령한 4개 주, 즉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를 주민투표를 통해 자국 영토로 병합했다. 여기서 헤르손과 자포리자의 병합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 회랑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만 아니라 흑해 속의 또 다른 작은 바다 아조우해를 독차지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의 점령 4개주 합병선언 의미는 무엇인가.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 합병 선언과 함께 이 지역에서의 전투를 영토방위로 규정했다. 푸틴의 이 언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전쟁 수행 방향성을 시사한다. 하나는 전쟁 성격의 변화, 즉 특별군사작전에서 조국수호전쟁으로의 전환이다. 실제로 최근 푸틴을 포함한 러시아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특별군사작전을 전쟁으로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미수복 돈바스 지역의 완전 해방을 군사작전 목표로 하되 방점은 점령지 확대 공세보다는 병합지를 수호하는 방어 모드로의 전환이다.”

 

◆3단계는 합병 4개주를 놓고 일진일퇴의 공방전

 

─3단계는 어떤 상황인가.

 

“전황의 세 번째 단계는 동절기 추위로 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로, 약 1,500km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를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전선의 교착 단계이다. 양측 모두 대규모 병력 손실과 무기 고갈, 동장군의 기승으로 전세를 비약적으로 뒤집지 못하고 있지만 동부의 전략 요충지 몇 곳에서는 일진일퇴의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노보로시야 지역을 자국 영토로 전격 편입해 영토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쟁의 판세는 전반적으로 러시아가 밀리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임전무퇴의 강한 결기로 실지를 탈환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맹렬한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세계의 풍부한 병참 보급과 첨단무기·위성 첩보 지원에 힘입어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동부 전선에서 대승을 거둔 데 이어 남부 헤르손까지 밀고 내려왔다. 급기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역공에 밀려 개전 이후 점령한 영토의 절반 정도까지 내줬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특히 남부 헤르손 방어 실패 이후 수세 국면 전환을 위한 전략과 전술의 재검토가 요구되었다.” 

 

─러시아군의 동태는.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크렘린의 전열 재정비 작업과 관련하여 최근 눈에 띄는 몇 가지 군사전략적 행보가 있다. 먼저 지난해 11월 9일, 점령지였던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시에서의 전술적 후퇴다. 역사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헤르손주의 주도(州都)인 헤르손시(드니프로강 서안 위치)를 과감히 포기하고 드니프로강 동안의 헤르손 지역으로 자진 철군해 방어선을 새롭게 구축한 것이다. 이는 드니프로강을 경계로 전선의 고착화와 안정화를 위한 조치로 보인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력망과 철도망 등 기간시설을 겨냥한 정밀 타격이다. 러시아는 겨울을 앞두고 대포와 미사일, 이란제 드론 등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의 전력·에너지 기간시설과 철도망에 대한 집중 공격을 시작했다. 민생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시설 파괴 전략은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러시아가 설정한 레드라인의 침범, 즉 지난해 10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폭파 공작에 대한 보복성 앙갚음 측면도 있다.”

 

◆러시아 숨고르기와 전열 재정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부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주의를 동남부 전선에서 북부로 돌리려는 기만전술도 관찰된다.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과 마찬가지로 연합군사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벨라루스에 대규모 병력과 군사 장비를 파견했고 합동군을 구성해 우크라이나 북부 접경지역에 배치했다. 올해 1월 16일에는 다수의 전투기가 참여한 공군 합동훈련도 실시했다. 최근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의 군사 활동 강화는 성동격서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물론 벨라루스를 거쳐 우크라이나 북쪽으로 재침할 개연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여러 정황상 그럴 공산은 낮아 보인다. 시선을 끌어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분산시킴으로써 동남부 지역 방어를 헐겁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러시아의 침공군 사령관이 수차례 교체된 것도 주목된다.

 

“우크라이나 침공군 사령관 교체를 통한 군사작전의 효율성 강화 노력도 엿보인다. 올해 1월 11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통합사령관을 3개월 만에 세르게이 수로비킨 대장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으로 바꿨다. 수로비킨 장군의 경질을 일각에서는 헤르손 사수 실패에 대한 문책 인사로 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군 사령관을 전격 교체한 더 큰 목적은 그동안 러시아군의 패배와 후퇴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됐던 지휘명령 체계의 난맥상을 개선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요컨대 사령관 직급의 상향 조정을 통해 작전명령의 원활한 하달, 부대 간 전투 활동의 긴밀한 조정, 병참·보급의 효율적 지원 등을 향상하기 위함인 것이다.”

 

◆ 전황의 풍향계 바흐무트 공방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돈바스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 바흐무트에서 9일(현지시간) 포격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바흐무트=로이터연합뉴스

─현재 전선 상황은.

 

“2023년 2월 현재 전선은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 동남부 4개 주에 고착돼 있다. 군사적 대치선 대부분에서 저강도 전투 또는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돈바스의 전략적 요충지인 바흐무트와 솔레다르, 크레미나 일원에서는 지난해 여름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공방전을 연상시킬 만큼 피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전체적인 전황은 러시아가 신속한 전열 재정비와 함께 지난해 9월에 동원한 30만명의 예비군을 일선에 전력화한 결과 오랜만에 반격의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투에 죄수 부대로 구성된 민간군사기업 와그너그룹 용병을 투입해 수 주간의 격렬한 교전 끝에 1월 14일 바흐무트로 향하는 관문 솔레다르를 수중에 넣었다. 솔레다르 점령은 지난해 이후 벌어진 주요 전투에서 거둔 첫 승리로 기록되고, 후속 공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 현재 전장의 초점은 어디에 있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철로의 교차점 바흐무트와 그 인근 지역을 놓고 건곤일척의 돈바스 대회전(大會戰)을 벌이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돈바스의 교통요충지 바흐무트의 방어와 탈환을 둘러싼 전투를 칼싸움(Knife battle)으로 표현한다. 2차 세계대전의 물줄기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풍향을 가를 변곡점 전투라는 의미인데 그만큼 바흐무트 공방전은 고기분쇄기라 불릴 정도로 전쟁의 광기가 가득하고 참혹하다. 와그너그룹 민간용병과 우크라이나 정예군이 정면으로 맞붙는 헤비급 타이틀 교전에 포격전, 참호전, 진지전, 근접전, 시가전에 인해전술까지 아우르는 모든 형태의 전투방식이 총동원되어 양측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도 전쟁의 종식은 여전히 요원하고 시계 제로다. 봄은 다가오는데 고물가에 휘둘리는 지구촌 가족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홍완석 원장 제공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동구지역연구과 석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정치학박사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장 및 러시아연구소 소장 ▲·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현)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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