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역사에 비해 매력적 건물 없어”
창의적 설계 유도·유연한 제도운용에
신속행정으로 서울 디자인 혁신 꾀해
사전공모 제도 도입 디자인부터 확정
요건 충족시 초고층 아파트 허용한다
공공 1호 사업 노들섬을 ‘예술섬’으로
“그동안 서울이 ‘엄근진’(엄숙·근엄·진지) 도시였다면, 앞으로는 매력적이고 즐거운 도시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일 시청에서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이 같이 강조했다. 다른 세계적 도시들에 비해 서울에 특색 있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 부족하다는 게 오 시장의 문제의식이다. 2007년 시장 재임 당시 획일적인 직사각형 디자인의 일명 ‘성냥갑 아파트’ 퇴출을 내세웠던 오 시장은 서울의 새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뿐만 아니라 향후 지어지는 아파트 등 주택 역시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건축물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 관련 제도와 행정 절차 개선에 나서고, 혁신적 디자인의 건축물들엔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이날 오 시장은 “서울은 역사가 오래된 것에 비해 매력적인 건축물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후 혁신적인 건축물이 부재한 상황이다. 혁신 건축물이 자연스럽게 많이 지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혁신방안에 따르면 서울시는 크게 △창의적 설계 유도 △유연한 제도 운용 △신속행정 3가지 방안을 통해 서울의 디자인 혁신을 꾀한다. 공공 분야부터 창의적 건축설계를 유도하고, 이를 민간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예술성과 상징성이 필요한 공공 건축물은 사전공모 제도를 도입해 디자인부터 확정한 뒤 공사를 시작한다. 창의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도록 설계비와 공사비를 유연하게 조정한다. 오 시장은 “공사비 위주의 건설 문화를 바꿔 디자인을 우선시하겠다”며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민간 건축물에는 혁신 건축 디자인 제안(공모)과 가칭 ‘통합선정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사업 추진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높이·용도 등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을 120%(1.2배)로 올려준다. 새로 만들어질 통합선정위는 도시, 건축, 교통, 환경 등 공공·민간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특별건축구역 제도도 활용된다. 건축법에 따라 일조권 등 일부 규정을 배제·완화해 적용하는 구역인 특별건축구역은 그동안 활용도가 제한적이었다. 현재 서울의 특별건축구역은 단독·한옥 밀집지역 3건과 공동주택 28건에 불과하고, 공공건축은 전무하다. 시는 특별건축구역의 개념을 ‘디자인 자유구역’으로 개편해서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용적률 상향 등 인센티브는 일반 건축물에 우선 적용된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엔 단계적 확대 적용을 검토한다.
지난해 3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제시한 서울형 용도지역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의 세부 운용기준도 곧 마련한다. 용도지역의 경계를 허문 이 제도를 활용해 다용도 복합개발을 허용, 일자리와 주거, 여가, 문화 등 다양한 기능이 혼합된 미래형 공간을 조성한다는 목표다. ‘서랍 속 규제‘로 불리는 불필요한 규제도 없애 나간다.
심의 과정 간소화로 초기의 혁신적인 설계안이 왜곡되는 일 없도록 막고, 기획부터 준공까지 사업 전 과정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지원한다는 게 오 시장의 구상이다. 오 시장은 “그간 한국의 건축물은 복잡한 심의 과정에서 사업계획이 지연되고 디자인이 왜곡돼 용을 그렸는데 뱀이 나오고, 호랑이를 그렸는데 고양이가 나오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분야 디자인 혁신과 관련해 오 시장은 “성냥갑 아파트 퇴출 2.0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관과 조망, 한강 접근성, 디자인 특화설계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초고층 아파트 건립을 허용해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조성한다. 아파트 저층부·입면 특화 등 우수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적용한다. 다세대·연립주택 등 저층주거지의 경우 더 살기 좋은 동네 ‘한층 더 예쁜 집 만들기 프로젝트’(가칭)를 통해 디자인 특화 시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시는 노들섬을 시작으로 제2세종문화회관, 성동구치소, 수서역공영주차장 복합개발 등 4곳에서 공공분야 디자인 혁신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민간분야는 올 상반기 중 ‘도시·건축 혁신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대상지 5곳 내외를 선정할 방침이다. 1호 사업인 노들섬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획 디자인 공모를 진행 중이다. 디자인 구상안이 결정되면 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투자심사 등 예산확보를 위한 사전절차를 밟는다. 이후 공모를 통해 최종 설계자를 선정한다. ‘예술섬’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디자인을 개선하고 노들섬 동서 측을 연결하면서 한강의 석양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보행교도 신설한다. 한강을 배경으로 한 수상예술무대도 만들 계획이다.
아울러 시는 건축가 위상 강화와 건축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서울시 건축상’의 위상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에 버금가도록 높이고, 심사위원단도 세계적 건축가와 전문가로 구성할 생각이다. 오 시장은 “과거 DDP를 지을 때 말도 탈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며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으로 서울의 표정이 바뀌고, 5∼10년 뒤에는 도시 경관에 많은 변화를 일궈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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