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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미·중 패권경쟁 기회로 활용… 인도는 새 길 열어줄 마법의 문”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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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01 06:00:00 수정 : 2023-01-31 19: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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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한·미동맹 강화 분명히 했지만
한·중관계 악화하고 있다는 조짐 없어

印, 평균연령 30세 이하… 비약적 성장
2023년 수교 50주년 계기 관계증진 노력을

北 도발에 단호한 대처 의지 표명하되
한반도 긴장 완화·화해 목표 일깨워야

새해 벽두부터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이 가득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작년 무차별 미사일·무인기 도발도 모자라 올 초 “핵무기 보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자체 핵무장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응수했다. 미·중 간 군사대결의 뇌관인 대만해협도 심상치 않다. 미 군부에서는 중국이 2년 내 대만을 무력 침공해 미·중이 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덩달아 군비경쟁도 불붙고 있다. 중국은 작년 국방예산을 7.1% 증액한 데 이어 핵탄두를 2030년까지 3배 가까이 늘린다고 한다. 대만과 일본도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이준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주요국들 간 군사적 충돌이 이제 현실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올해 한반도와 대만해협이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날로 거세지는 신냉전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이사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최소한 확실한 친구, 그것도 강력한 친구가 있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40년간 주중공사, 주일본·주인도 대사 등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외교안보연구원장·한국외교협회장도 지내 현장과 이론에 두루 정통하다. 인터뷰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연구원 이사장실에서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준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한·일 관계는 과거사의 족쇄에 매여 양국이 협력 때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이득을 희생시키고, 이는 양국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상회담에서 관계를 정상화하고 그 후 개별 현안을 풀어가는 게 순리”라고 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올해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보는지.

“중국, 북한발 불안정 요인이 매우 크다. 북한의 내부 사정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대북제재의 어려움에 더해 3년간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통제로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미사일, 방사포 등 무수히 많은 도발을 했지만,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미국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내부 통제를 위한 도발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중국 또한 시진핑 3기 출범 후 위드 코로나 전환이 여의치 않고,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대만 문제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대만에 심각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까지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게 최대 과제일 텐데 정세관리 방안은.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평화를 추구했다면, 윤석열정부는 북한 도발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의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발이고 자기 뜻대로 상황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기분은 나쁠지라도 경거망동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에 감정적으로 강경한 표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발에 단호한 대처 의지를 밝히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 목표가 긴장 완화와 화해에 있다는 것을 북한이 깨닫게 해야 한다.”

―7차 핵실험 등 북핵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북한의 7차 핵실험 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관련국들과 긴밀하게 협의를 해놓아야 한다. 중국, 러시아를 설득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결의를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과거 북한 도발에 러·중의 반대로 결의안 채택이 무산됐는데 7차 핵실험 때는 다를 수 있다. 중·러가 찬성하거나 최소한 기권하도록 외교 역량을 모아야 한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 시 받을 불이익이 무엇인지 사전에 알게 하는 노력도 긴요하다.”

―윤 대통령이 전술핵 배치와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전술핵 배치는 북한에 대한 경고로서 논의하는 정도까지 괜찮지만 실익이 크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와 멀어지고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자체 핵 개발은 동맹국인 미국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대외적 메시지 발신도 자제하는 게 좋다. 희생이 너무 크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맞지 않는 망나니 행동인데 동일하게 대응하면 명분이 없어진다.”

 

―윤석열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한다면.

“윤 정부의 외교정책은 한마디로 중견 국가로서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하겠다는 거다. 이 정책의 문제점은 슬로건으로서는 그럴듯하지만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당장 우리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나라들과 껄끄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우리가 실리·세일즈 외교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는 눈앞의 이익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력이나 존재감도 커졌기 때문에 가치 기반 외교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국민이 단기 실익을 놓치는 기회비용을 용인하는 성숙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미·중 간 패권경쟁은 위기이자 기회인 듯하다. 정책 구현에 갈등과 모순이 생기고 특히 한·중 관계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큰데.

“윤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는 조짐은 아직 없다. 오히려 전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중국에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는 중국을 실망시켜 관계를 악화시킨 전례가 있다. 중국은 한·미동맹 강화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직접 불만을 표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도 대한 관계를 악화시키는 게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윤 정부가 한·중 관계의 중요성, 대중 관계 강화 의지 등을 빼놓지 않고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얼마 전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중국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미·중 간 경쟁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에 기반한 기본 위치 선정을 하고, 중국에 대해 이웃으로서 최대한의 배려를 해나간다는 원칙을 견지하면 될 거다. 미·중 간 신냉전 분위기가 우리에게 도전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적극적 사고를 해야 한다.”

―중국은 얼마 전 한국의 방역조치에 비자 발급 중단 보복에 나섰고 경제 분야로 피해가 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의 의도는 길들이기에 있다. 우리가 만만해 보이기 때문에 힘을 쓰는 거다. 보복의 원인인 우리의 방역조치가 정당한 것이었다면 이러한 힘쓰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을 하거나, 과도한 조치를 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원칙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눈앞의 피해가 두려워 중국의 무리한 행동에 굽히면, 우리는 점점 중국의 근육질 외교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과도한 대중 경제의존도를 낮추는 게 시급한데 어떤 대안이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처럼 한·중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칩4 동맹을 비롯해 미국·일본과 경제안보 측면에서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이 두 나라와 경제 관계를 강화해 대중 의존도를 경감시킬 수 있다. 동남아, 서남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리면 중국의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많다.”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질 듯한데.

“인도가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마법의 문이라고 확신한다. 인도는 올해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 그것도 평균연령 30세 이하의 젊은 나라가 될 것이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경제적·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가 될 거다. 올해가 양국 수교 50주년임을 계기로 관계 발전의 엄청난 잠재력을 실질 관계 증진으로 연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도가 급성장하고 있어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양국의 연간 무역액은 각 1조달러인데 교역이 고작 200억달러 남짓으로 너무 적다. 정부는 인도를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기업들은 인도에 적극 진출해 많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꼬인 한·일 관계를 풀기가 쉽지 않은데 관계 정상화 방안은.

“지금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되어 있는데, 정부는 이 모멘텀을 잃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급적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만족하는 해법을 찾는 건 불가능한 만큼 적정한 선에서 국익을 위한 결단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이미 25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 간에 체결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한·일 관계의 바이블이다. 강제동원 등 현안은 이 정신의 바탕 위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임한다면 해결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일본이 느끼는 위협을 이해하고, 일본 정부가 방위력을 강화해 무력을 쓸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만드는 정도로 봐야 한다.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는 우리 안보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과거 군국주의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일본 내에서 제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힌 극우세력이 조금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 컨센서스(합의)는 있을 수 없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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