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후 추가 범행 노리던 용의자와 조우
격렬한 몸싸움 끝에 총기 빼앗고 "당장 꺼져"
경찰 "그 없었으면 피해 더 컸다… 진짜 영웅"
“돈을 훔치러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마을에서 총기난사 범죄를 일으킨 용의자의 추가 범행을 막은 청년 브랜던 차이(26)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용의자 휴 캔 트랜(72)이 검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조사에 차질이 빚어지는 가운데 미 언론은 목숨을 걸고 피해 확산을 막은 이 영웅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고 나섰다.

23일(현지시간) NYT에 따르면 범행이 일어난 21일 밤 10시30분쯤 차이는 LA 인근 앨햄브라의 한 댄스홀 사무실에 있었다. 이미 옆 마을인 몬터레이파크의 댄스 교습소에서 총기를 난사해 10명을 살해한 트랜이 갑자기 이 댄스홀에 들이닥쳤다. 대용량 탄창이 달린 반자동 공격용 권총을 든 트랜은 추가 범행을 위해 표적을 찾는 듯했다고 차이는 NYT에 말했다.
“그(트랜)는 나를 쳐다봤고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는 점이 뚜렷히 드러났다. 그의 눈은 위협적이었다. 돌연 심장이 내려앉으며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었다.”(브랜던 차이)
트랜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차이는 곧바로 트랜에게 달려들어 권총을 움켜잡았다. 약 1분30초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트랜의 권총을 빼앗은 차이는 “여기서 당장 꺼져”라고 외쳤다. 차이가 가만히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트랜)에게 달려든 것은 원시적 본능이었다. 그의 몸짓, 얼굴 표정, 눈으로부터 그가 다른 사람들을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옆 동네에서 벌어진 비극이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브랜던 차이)

LA 경찰은 브리핑에서 트랜이 댄스 교습소에서의 1차 총기난사 후 인근의 다른 댄스홀로 옮겨 추가 범행을 저지르려 했던 정황을 설명하며 차이의 활약상을 언론에 소개했다. 경찰은 “평범한 주민이 이웃의 생명을 구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트랜한테서 총기를 빼앗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이를 일컬어 “영웅이라고 생각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앞서 트랜은 21일 아시아계 주민이 많이 사는 LA 인근 몬터레이파크의 한 댄스 교습소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당시 교습소 안에선 음력설(Lunar New Year) 맞이 축제가 한창이었다. 트랜의 총격으로 남자 5명, 여자 5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10명 이상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상자는 대부분 중국계 주민이라고 한다. 트랜은 범행 후 차량을 타고 도주했으며,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력 용의자의 사망으로 정확한 범행 동기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일단 현지 경찰은 아시아계를 노린 증오범죄는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랜 본인도 중국계 이민자로 추정되는 만큼 특정 인종을 향한 증오가 범행 동기로 작용하진 않았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현지 중국계 주민들 사이에선 트랜이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었으며, 같은 중국계 커뮤니티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는 등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음력설 축제의 와중에 홀로 극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다가 홧김에 범죄를 저질렀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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