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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엔딩.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 지방대 살아남을까?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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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17 06:00:00 수정 : 2023-01-18 14: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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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 기로’ 지방대, 자의 반 타의 반 추진

인구 감소세 부산, 대학교 22곳 달해
부산대·교대 통합 반대로 난항 겪어
강원대·강릉원주대 통합작업도 중단
대다수 사립대는 움직임조차 없어

지방 14개 대학 26개 학과 ‘지원 0명’
정시 경쟁률 3대 1 미만 비중도 87%
충격적인 결과에 학과 통폐합 나서
10년 동안 신설 학과 등 4108개 달해

지방대 통합 해법은
전문가 “재정적 보상 주어져야 가능
반대급부도 없이 밀어붙이면 실패”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매년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소멸한다’는 이른바 ‘벚꽃엔딩’ 얘기가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교육 개혁에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한계·부실 대학에 대해서는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당장 지방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방대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통합을 추진하면서 ‘대학 통합’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나, 효과가 미미해 실효성도 의문이다. 몇몇 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추진되고 있지만, 대다수 사립대는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채 통합에 꿈쩍도 안 하기 때문이다.

 

◆지방대 통합의 역사…절반의 성공

수년 전부터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지방을 떠나 서울로 몰리는 ‘탈 지방, 서울 러시’ 현상이 현실이 되면서 일부 지방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전국적으로 지역 거점 국립대 9곳 중 충남대와 충북대를 제외한 7곳이 한 차례 통합했다. 2006년 부산대와 밀양대를 시작으로, 강원대와 삼척대, 전남대와 여수대가 각각 통합에 성공했고, 2008년엔 전북대와 익산대, 제주대와 제주교대의 통합이 성사됐다. 또 2021년 경상대와 경남과기대가 진통 끝에 경상국립대로 거듭났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앞서 충남대는 2005년과 2006년, 2011년 3차례에 걸쳐 충북대와 공주대, 공주교대·공주대와 잇따라 통합을 추진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지방대 통합은 교수와 재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은 물론, 졸업 동문과 지역주민들까지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통합에 따른 득실을 따지다 보니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국립대보다 상대적으로 수가 많은 사립대가 지방대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국립대에 비해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립대의 통합이 절실하지만, 선뜻 통합에 나서는 사립대는 보이지 않는다.

사립대가 빠진 일부 국립대 위주의 지방대 통합으로는 당면한 지방대 고사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전국에 거세게 부는 지방대 통합 바람

매년 인구 급감으로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 부산에는 4년제 대학만 14개에 이르고, 8개 전문대까지 포함할 경우 총 22개의 대학이 있다. 오래전부터 대학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으나, 통합에는 소극적이다.

 

최근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통합 얘기가 나왔으나 불과 몇 개월 만에 흐지부지 ‘없던 얘기’가 됐다. 부산교대 졸업생 등 동문과 부산대 교수·재학생들이 통합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간 통합도 뒷얘기만 무성할 뿐, 전혀 진척이 없다. 1996년 부산공업대와 수산대가 통합하면서 탄생한 부경대는 한 차례 통합 경험을 살려 두 대학 간 통합에 긍정적인 반면, 명성이나 역량이 예전만 못한 해양대가 오히려 통합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에서는 문경시가 추진 중인 숭실대와 문경대 간 통합을 위한 ‘숭실대 문경캠퍼스’ 설립에 속도가 붙고 있다. 숭실대와 통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문경대가 최근 입장을 바꿔 통합에 협력하기로 결정하면서 두 대학 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경시와 시의회, 숭실대 문경캠퍼스 유치추진위원회는 문경대와 숭실대 문경캠퍼스 설립을 위한 공동 노력 확약서에 서명했다.

 

경주에서는 뿌리가 같은 사립대인 경주대와 서라벌대가 통합을 추진 중이다. 4년제 대학인 경주대와 전문대학인 서라벌대학은 오랫동안 학내 분쟁으로 인한 기준 미달로 정부 지원이 제한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단 이사회는 지난해 4월 교육부에 통폐합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11월 서라벌대 총장을 경주대 총장 직무대리로 선임해 두 대학 업무를 맡긴 상태다.

강원도는 국립대인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2024년 공동 신입생 모집을 목표로 전문 용역까지 진행하며 ‘1도 1국립대’를 추진했으나, 사실상 무산되면서 통합작업이 중단됐다.

대전지역 국립대인 충남대와 한밭대도 통합을 추진 중이다. 두 대학은 지난해 12월 ‘충남대·한밭대 대학통합 논의 공동 선포식’을 가졌다. 이들 두 대학은 가칭 ‘대학 통합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최적의 통합(안)을 만들 예정이다.

 

◆대학 안 되면 학과라도 통합…생존 위한 대학의 몸부림

올해 대입 정시모집에서 부산의 A대학은 각각 6명과 12명을 모집할 예정이던 국제계열 학과와 공학계열 학과에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고, 1명만 지원한 학과도 3곳이나 나왔다. B대학은 공과대학 경쟁률이 1대 1에도 못 미치고, C대학은 3대 1 미만의 경쟁률을 기록한 학과가 16곳에 달했다.

 

정시의 경우 수험생들이 가·나·다군에서 각각 1곳씩 총 3번에 걸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중복 지원하는 수험생을 감안할 경우 경쟁률이 3대 1 미만이면 사실상 ‘미달’이라고 봐야 한다. 이처럼 정시모집 경쟁률이 3대 1 미만인 대학은 전국에서 68곳이었는데, 이 중 87%가 지방대다. 또 지방 14개 대학 26개 학과는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이에 따라 대학 간 통합도 중요하지만, 학내 학부·학과 간 통폐합을 추진하는 대학이 부쩍 늘었다. 동아대는 사학과와 고고미술사학과를 역사문화학과로, 에너지자원공학과와 환경공학과를 환경에너지공학부로 통합하고, 2021년부터 독어독문학과와 프랑스문화학과를 없앴다.

 

지난해 대대적인 학사조직 개편을 단행한 부경대는 기존 행정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각각 행정복지학부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로 변경했다. 또 공과대학 내 금속공학과·재료공학과·신소재시스템공학과를 하나로 묶어 융합소재공학부로 통·폐합했다.

동덕여대는 지난해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를 ‘유러피언스터디즈학과’로 통폐합했고, 단국대 천안캠퍼스는 2020년 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포르투갈어과를 ‘유럽중남미학부’로, 일본어·중국어·몽골·중동학과를 ‘아시아중동학부’로 각각 통합했다.

지난 10년간 전국 대학에서 추진한 학과 개편은 4000건이 넘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 및 신설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제 대학에서 통폐합되거나 신설된 학과는 4108개에 달했다.

올해 정시모집에서 지원자 ‘0명’이 나오는 등 충격적인 모집결과를 받아든 지방대들이 학과 통폐합을 넘어 대학 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자리 직결된 교수 반발 잠재울 비전 제시 필요”

 

지방대학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학생 수는 매년 감소하는 반면, 대학 수는 너무 많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국내 대학 수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1995년 김영삼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단행한 ‘대학정원 자율화’ 조치와 김대중정부에서 개정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기존의 허가제에서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대학 설립 규제를 완화하면서 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학 수가 증가하고 정원까지 늘면서 학생의 자질과 논문 발표 및 연구실적 등으로 평가되는 교수 역량을 비롯한 대학 재정자립도·학생 대 교수 비율·도서관 장서 수 등 대학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른바 부실대학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대 들어서부터 부실대학 정리를 위해 대학구조조정평가를 통해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을 선정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사립대학의 특성상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대 통합은 주로 국립대 위주로 논의된다. 문제는 사립대에 비해 국립대 수가 월등히 적다 보니 효과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국립대 통합도 교수와 학생 등 학내 구성원과 졸업 동문 및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립이든 사립이든) 지방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서도 지방대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지방대학 통합문제는 교수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어 교수 개인이나 단과대 차원의 ‘리워드(재정적 보상)’가 주어져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을 누를 수 있는 초강력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수들에게 대학 통폐합은 일자리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교수 집단의 반발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학생들이야 졸업하면 모교의 문제로 과거형이지만, 교수들에겐 생존권과 직결된 현재진행형이다. 대학 통합은 교수들의 보수나 복리후생 증진 등 명백한 비전이 제시돼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멀리 볼 것도 없이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통합도 두 대학 간 통합이 성사될 경우, 당장 부산대 사범대 교수들이 부산교대로 적을 옮겨야 한다”며 “교수들에게 아무런 비전이나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은 채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 5개 부처는 16일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활력타운’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역활력타운은 은퇴자·청년층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문화·복지가 복합된 주거 단지다. 행안부가 지역활력타운 기반을 조성하고 문체부는 체육·문화 시설, 복지부는 돌봄·보건·의료 제공, 국토부는 주택·기반시설 등을 지원한다.


부산=오성택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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