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휴대폰 경보음에 놀라 문자를 확인하는 동시에 바닥이 떨리는 게 느껴졌어요.“
“저도요. 거실에 있었는데 가구가 크게 흔들린 건 아니지만 진동이 있었어요.”
“저는 같은 동네인데 왜 못느꼈을까요?”
“저도 전혀 몰랐어요. 제가 둔해서인지….”
<지난 9일 경기 남부 한 맘카페에 올라온 지진 관련 반응>

지난 9일 새벽 1시28분, 인천 강화군 서쪽 25㎞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는 19㎞, 진도는 규모 3.7이었다. 당초엔 규모 4.0으로 추정돼 기상청 지진 조기경보가 발표됐다.
한밤 중 휴대폰에서 울린 커다란 재난문자 경보음에 수도권 주민은 화들짝 놀랐다. 곧바로 많은 사람이 지진을 느꼈다. 인천과 서울은 물론 경기 남부, 강원 춘천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진 경험을 공유했다. ‘침대가 한 차례 출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이 진동처럼 부르르 떨렸다’ 등 지진에 대해 표현하는 말은 조금씩 달랐다. 같은 아파트에서도 지진 감지 여부가 나뉘기도 했고 ‘못 느꼈다’는 사람도 많았다.
각기 다른 증언에 시민들은 “신축 아파트는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어 지진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지진에 흔들림이 있는 집이 충격을 흡수해서 더 안전한 것 아닐까” 등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지역, 심지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지진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민감도 때문일까, 아니면 건물의 안전성, 혹은 그밖의 문제일까.
내진 설계 분야 전문가인 유영찬 한국건설연구원 선임연구원과 문답을 통해 알아봤다.

Q. 같은 지진이 다르게 전달되는 요인은 무엇인가.
A. 지진은 최초 발생한 위치, 지진이 발생한 기반암에서 건물까지 지진파를 전달하는 물질인 매질, 건물의 형식과 구조, 층고 등에 따라 모두 다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1차적으로는 지진의 규모와 진원의 깊이가 중요하다. 지진 규모는 폭탄의 위력으로 생각하면 된다. 폭탄의 위력이 세면 살상력이 크고 위력이 약하면 살상력도 약한 것처럼, 지진 규모에 따라 흔들림과 피해 정도가 나뉜다. 진원의 위치도 중요하다. 폭탄의 위력이 강해도 먼 곳에서 터지면 영향이 미미한 것처럼, 진원이 아주 깊으면 규모가 커도 지표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Q. 지역마다 다르게 감지되는 이유는?
A. 진원과 규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반암이다. 지진은 맨틀 위에 위치한 단단한 암반, 즉, 기반암에서 발생한다. 그 암반과 지표 사이에는 성토층, 매립층, 퇴적층 등 여러 토양층이 있는데, 그 층이 단단하냐 무르냐에 따라 지표면에서 느끼는 움직임이 달라진다.
단단한 땅으로는 단주기파가 전달되고 무른 땅으로는 장주기파가 전달된다. 단주기파는 쉽게 말하면 ‘부르르’ 떨리는 것, 장주기파는 ‘출렁’하는 것이다.
산을 깎아 지은 아파트는 단단한 땅 위에 지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호수나 논밭을 메워 만든 신도시는 기반암과 건물 기초 사이에 무른 재질이 있는 것이다. 기반암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부르르 떨리는 느낌, 땅이 무른 지역에서는 출렁이는 느낌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Q. 같은 지역(땅)이라도 건물마다 감지되는 수준이 다른가?
A. 건물 구조와 형식에 따라 다르다. 아파트의 경우 벽이 많다. 벽이 많은 건물은 구조가 단단하고 무겁기 때문에 잘 안 흔들리며 주로 단주기파가 영향을 미친다. 반면 일반 상업 건물처럼 철골 기둥으로 되어 있거나 철근콘크리트 구조여도 벽이 별로 없이 기둥과 보로 이뤄진 건물은 비교적 유연하다. 유연하기 때문에 벽구조 건물보다는 잘 흔들리며 장주기파에 반응한다.
건물의 질량이 크면 힘이 세고 버티는 힘이 강하다. 반면 가벼우면 잘 흔들린다. 쉽게 쇠기둥과 갈대에 비유할 수 있다.
성냥갑을 일렬로 세워 붙인 구조의 판상형 아파트의 경우 늘어선 방향을 축으로 땅이 흔들릴 때보다 그 수직 축으로 흔들릴 때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Q. 건물의 층고에 따라서는 지진 감도가 어떻게 달라지나?
A. 저층건물은 단주기파, 고층건물은 장주기파에 더 반응한다. 똑같이 단단한 땅 위에 지어졌다면 저층건물이, 무른 땅 위에 지어졌다면 고층건물이 지진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같은 건물에서도 1층과 20층이 느끼는 지진이 다르다.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 서 있던 사람이 휘청거리는 것(관성)처럼, 땅이 흔들리면 저층은 지반과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고층으로 갈수록 진동폭이 커져 더 크게 움직인다.
종합하면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크게 흔들림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무른 토양 위에 기둥·보 구조로 지어진 유연한 건물(주로 상업건물)의 고층이라고 할 수 있다.
Q. 건물이 많이 흔들리는 것과 덜 흔들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안전한가?
A. 흔들림으로 위험도를 판단할 수 없다. 지진 반응 정도는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지며 그 모든 것을 고려해 내진설계를 했다면 안전도는 다 비슷하다. 내진설계는 앞서 설명한 기반암과 거리, 건물의 재질, 구조, 형식, 층고 등에 따라 하중을 계산해 지진에 저항할 수 있도록 짓는 것이다. 사용성보다는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안전성에 초점을 맞춰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현행법상 2층 이상(목조건물은 3층 이상)의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갖춰야 하며 주택 용도의 건물은 1층이어도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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