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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0년 만의 최대 인플레… 중고품 찾는 사람 늘었다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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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08 13:00:00 수정 : 2023-01-08 14: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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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달라진 생활 패턴

우크라 전쟁으로 유가·원재료 값 올라
엔화 가치 하락… 수입 물가 상승 겹쳐
식료품·전기·가스 등 가격 인상 러시
11월 소비자물가지수 전년비 3.7%↑
리사이클 전문점 인기… 가전 매출 2배↑
임금 인상 불구 ‘물가苦 터널’ 길어질 듯

경기부양 목적 10년간 금융완화 정책
일본은행 국채금리 변동폭 확대 주목

“품목마다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시간대가 따로 있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마트에 나와요. 한 번에 사면 편하지만 발품을 팔면 돈을 꽤 아낄 수 있어요.”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 마트에서 만난 40대 가정주부 곤노 리코(今野莉子)씨는 요즘 하루에 여러 번 장을 보러 나갈 때가 많다고 했다. 오후 5시 무렵에 야채 가게에, 오후 10시 정도에는 아이들 간식을 사러 집 근처 마트에 간다.

 

고물가 시대를 사는 일본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 원재료 등의 가격이 오르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에다 엔저현상(엔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까지 더해지며 가계의 고충이 심하다. 소비자물가지수는 40년 만에 최대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특히 생활에 필수인 식료품비, 전기·가스 등의 광열비 인상이 두드러져 체감하는 어려움은 더욱 크다. 물가 상승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여 일본인들이 통과해야 할 물가고(苦)의 터널은 길다.

지난 2022년 12월 29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중고품 매장에서 손님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진열대와 매장 벽에 중고품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기록적 가격인상 러시, 한동안 계속될 듯

당장 할 수 있는 건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는 것이다. 한층 뚜렷해진 절약지향형 생활 패턴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중고품 인기다. 지난달 29일 신주쿠의 중고품 매장에서 30대 남성이 식기류, 작은 식탁 등을 계산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샀다고 했다. 그는 “이사를 하는 김에 살림을 새로 장만해 볼까도 싶었지만 중고품 중에도 상태가 좋은 게 많고, 무엇보다 싸지 않느냐”고 했다. 이런 현상은 지방도 마찬가지여서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의 리사이클 전문점 대표는 미나미니혼신문에 “가전제품 인기가 특히 높아서 12월 매출이 예년의 2배 정도다. 들어오는 대로 팔려나가 재고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효율적인 절약 정보 공유에도 관심이 많다. 마쓰자키 노리코(松崎紀子) 소비경제저널리스트는 도요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해를 “고물가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절약법을 고민해 온 1년이었다”고 규정하며 “종래의 절약 상식이라고 믿기만 했다간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으니 효율적인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일본인을 옥죄는 인플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소비자물가지수다.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고 발표했다. 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급등한 1981년 12월 이후 40년11개월 만의 최대 폭 상승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8월에는 1∼2%였으나 9월부터는 3%를 넘어서며 상승 폭이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식료품비, 광열비 상승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데이고쿠(帝國)데이터뱅크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격이 오른 식료품 수는 2만822개로, 평균 상승률은 14%에 달했다. 올해에도 4월까지만 벌써 7152개 품목이 평균 18%의 가격 인상을 예정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요금 상승세도 뚜렷하다. 지난해 11월 전기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20.1%나 올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호쿠(東北)전력 등 5개 전력회사는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요금을 27.9∼42.7 올리는 방안을 승인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며 “전력회사 10곳 중 7곳이 요금 인상을 신청했거나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고바야시 신이치로(小林眞一郞) 미쓰비시(三菱)UFJ 리서치&컨설팅 수석연구원은 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식료품, 전기요금 상승은 일상생활과 밀접해 소비자들은 숫자 이상의 물가 상승을 느끼고 있다”며 “강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금인상 나서지만… 물가반영 실질임금은 하락

고물가에 대한 기업,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대응은 임금 인상과 인플레 수당 지급이다.

캐논은 지난달 직원 2만5000명의 기본급을 일률적으로 3.8%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응한 것으로 임금 인상은 20년 만이다.

창호업체 YKK AP사는 3%의 임금 인상과 함께 고물가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일시금 5만엔(약 48만원)을 지급했다. 또 미쓰비시자동차가 정사원 1만2000명에게 일시금 10만엔(96만원)을 지급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지난해 기업의 77.6%가 어떤 형태로든 임금 인상을 했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데이고쿠데이터뱅크 조사(2022년 11월 11∼15일, 1248개사 대상)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26.6%(이미 지급+지급 예정+지급 검토)나 인플레 수당 지급에 전향적이었다.

재계 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회장은 1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물가를 중시하는 임금 인상 노력은 기업의 책무”라고 말해 기업도 고물가 고통을 분담해 직원 사기를 진작하는 임금 인상 기조에 긍정적 입장임을 보여줬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임금 인상을 강조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6일 경단련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성장과 분배 선순환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임금 인상에 협력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지난 2022년 12월 30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마트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일본은 2022년 식료품 가격이 크게 올라 소비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임금 약 5% 인상을 올해 봄 임금협상(춘투·春鬪) 목표로 제시했다. 1995년 5∼6% 인상을 내걸었던 이래 28년 만의 최고치다.

기업,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에도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아사히신문은 후생노동성의 지난해 11월 근로통계조사를 인용해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2021년 11월보다 3.8% 하락했다. 8개월 연속 하락세이며 하락 폭은 8년6개월 만의 최대치”라고 보도했다.

오히려 현재 물가에 기업의 원재료 구입 등의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실질적인 인플레이션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기업 간에 거래되는 물건 가격 수준을 표시하는 기업물가지수는 지난해 매달 9% 이상 올랐지만 소비자물가지수 최대 상승 폭은 3.7%였다. 나카노부 다츠히코(中信達彦) 미즈호리서치&컨설팅스 이코노미스트는 아사히신문에 “기업의 수익 등을 기초로 계산해 보면 올해 춘투 임금상승률은 2.59% 정도일 것”이라며 “물가 상승을 커버할 정도는 되지 못해 실질임금 하락 추이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본관 모습. 도쿄=AFP연합뉴스

◆고물가 대응 위해 저금리 정책 기조 바꿀까

 

고물가에 대한 일본 정부, 금융당국의 대응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저금리 금융완화 정책의 변화 여부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달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장기 국채금리의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0%로 확대했다. 장기 금리가 변동 폭 상한선(0.25%)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 조치에 대해 일본 언론은 “사실상 금리 인상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그간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꾀하는 저금리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런 기조를 주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이름을 따 아베노믹스로 불렸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도쿄=AP뉴시스

이로 인해 금리가 낮은 엔화를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지난해 10월20일 32년 만에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는 등 ‘역대급’ 엔저현상(엔화가치 하락)을 초래하고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져 가계, 기업 타격이 커졌다. 일본은행의 장기 국채금리 변동 폭 확대에 이목이 집중된 건 일본이 이런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려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금융완화를 끈질기게 밀어붙인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퇴임하고 새 총재가 오는 4월9일 임기를 시작하면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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