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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왜 격추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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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28 22:52:53 수정 : 2022-12-28 22: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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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도 ‘드론’ 기만전술에 당해
北 의도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
도발에 또 뒤통수 맞는 일 없어야
군 몰아세우는 일 없는 새해 되길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길 것 같다. 신냉전 체제가 고착화하고 평화는 아득하다. 장기전의 분수령이 된 여러 전투가 있었다.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 침몰도 그중 하나다. 지난 4월14일 저녁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남쪽을 항해 중이던 모스크바함을 향해 4발의 넵튠(Neptune) 지대함 순항미사일이 발사됐다. 두 발은 모스크바함 방공시스템에 의해 격추됐지만 나머지 두 발은 명중돼 폭발했다. 이틀 뒤 미국 국방부는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의 넵튠 대함 미사일 2발을 얻어맞고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모스크바함은 구식이긴 하나 한때 미 항공모함을 긴장케 했던 소련 최강 전투함이다.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는 사거리 100㎞ 이내에선 웬만한 미사일 접근을 불허한다. 여기에 공중 표적을 무력화하는 다양한 함대공 미사일까지 장착하고 있다. 마하 0.8 정도의 비행 속도를 지닌 다소 ‘평범한’ 넵튠 미사일이 이런 다단계 방공망을 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뚫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기만작전을 택했다. 넵튠 미사일 발사 이전에 튀르키예(터키)제 ‘바이락타르’ 무인기 여러 대를 띄워 모스크바함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모스크바함의 방공망을 과신한 러시아 해군 지휘관 누구도 이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자 이 틈을 비집고 날아든 넵튠 대함미사일이 모스크바함을 산산조각 냈다. 우크라이나의 기만과 러시아의 자만이 어우러진 결과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의 최대 수모”란 평가가 나온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박병진 논설위원

지난 26일 대낮에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휘젓고 다닌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북한 무인기의 청와대 정찰 사건 이후 8년 만이다. 여전히 군 대응 능력은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출격한 KA-1 경공격기가 이륙 직후 추락까지 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지난 5년간 문재인정부의 ‘평화 타령’에 군 대비 태세는 허물어지고 훈련 부족은 만성이 됐다. 그러니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후과(後果)다.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고 “우리도 몇 배의 드론을 북쪽으로 올려 보내라”며 경각심을 일깨운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해이해진 군 기강을 바로잡고 잠만 자던 무기운용체계를 정상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도 이에 못지않다. 침투한 무인기 5대 중 4대는 우리 군의 관심을 유도한 뒤 종적을 감췄다. 그 사이 나머지 1대가 여유롭게 수도권을 헤집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필경 의도된 교란 작전이다. 혼란을 가중해 우리 군 대응 태세를 떠보려 했을 것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궤계’(詭計: 속여서 치는 행위)와 다름없다. 군이 호들갑을 떨었음에도 유유히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으로 돌아갔다니 궤계가 통했다고 봐야 할까. 군 관계자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북한은 우리가 민간인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무인기를 격추하길 바랐을지 모른다. 20㎜ 벌컨포나 30㎜ 차륜형 대공포로 쐈다면 낙탄 피해는 불 보듯 했다. 그래서 남남 갈등이 야기되길 원했을 수도 있다”라고. 가정이긴 하나 듣고 보니 “왜 격추하지 못했냐”고 막무가내로 나무라기가 좀 그렇다.

아니면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도발의 전초전쯤으로 여겨야 하나. 최근 남북 대치 기류는 북극 소용돌이 한파만큼이나 얼어붙었다. 북한은 지난 10월14일 이른 새벽과 오후에 9·19 군사합의로 금지된 북방한계선(NLL) 북방 해상완충구역 내로 포병 사격을 감행했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은 의도된 일련의 도발 시나리오의 시작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북한의 추가 도발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 무인기로 무뎌진 우리 군 대응까지 확인한 마당인데. 노림수는 더 정교해질 게다. 과거 행태를 보면 예상 밖 장소와 시간에 도발하는 경우가 숱했다. 다시 북한의 도발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아픔을 반복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치밀한 분석과 준비는 기본이다. 모스크바함 침몰이 던진 교훈이기도 하다. 스산했던 한 해가 저문다. 군을 몰아세우는 일이 없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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