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운동화 간편복 차림 늘어
새 둥지 튼 핀테크·스타트업 증가
금융사 본격 디지털 전환도 한몫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일 때 제 로망은 풀정장 차림으로 여의도 거리를 거니는 것이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여름 더위에도 말끔한 정장을 입고 한겨울에는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것이 그렇게 좋았는데, 요즈음에는 많이 달라졌어요. 청바지에 운동화, 패딩을 입는 직장인이 부쩍 늘어난 겁니다.”

12일 점심시간을 앞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인근은 정장 차림을 비롯해 다양한 패션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이가 든 세대일수록 정장의 비중이 컸으나, 어릴수록 정장의 비중이 떨어지는 데다 밝은색으로 염색한 머리도 종종 눈에 띄었다. 여의도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이모(39)씨는 “과거에는 너무 정장 일색이라서 회사신분증 목줄 색을 보고 회사를 구분한다고 했는데, 요즈음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형색색이다”라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을 떠나 패션 측면에서 ‘상전벽해’를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가 정장-구두-코트의 ‘증권맨’ 차림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을 지나 자유분방하게 ‘청바지-운동화-롱패딩’ 차림 직장인도 함께 거니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의도에 새로이 둥지를 트는 핀테크, 스타트업 등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기존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선 금융권 전반에서 개발자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인력 및 IT 인프라 확충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은행의 금융정보화 추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국내은행 20개, 금융투자업자 86개, 보험사 41개, 카드사 8개 등 총 155개 금융사의 내부 IT 인력은 2018년 말 평균 62.5명에서 2021년 말 평균 74.5명으로 19.2% 증가했다. IT 예산 또한 평균 431억원에서 515억원으로 19.5% 늘었다.
기존에 서울 강남구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스타트업이 둥지를 옮긴 것도 여의도 직장 패션 변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뱅크샐러드를 비롯해 렌딧, 8퍼센트, 어니스트펀드 등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스타트업들이 대표적이다. 핀테크 기업뿐 아니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또한 증권사 빌딩이 빽빽한 이곳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한 스타트업의 관계자는 “과거에는 스타트업이 정부의 창업 지원이나 육성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 테헤란로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여의도 쪽에서도 관련 지원 등이 늘고 있다”며 “무엇보다 스타트업보다 금융사로서의 방향성 및 이미지를 강조하고, 플랫폼 운영을 위해 타 금융사와의 협력이 늘어나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IT나 게임 등 관련 기업은 판교로, 금융 및 핀테크 관련 기업은 여의도로 몰리는 셈이다.
또 다른 금융사의 직장인 김모(41)씨는 “금융권의 체질이 바뀌는 것도 있지만 여의도에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직장인 외에 20대, 가족 방문객 등 유동 인구가 다양해진 것도 이러한 패션 변화를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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