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안군이 반정부 시위에 참석한 여성들만 겨냥해 얼굴, 가슴, 생식기에 산탄총을 쏘는 방식으로 표적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위 참석자에 대해 첫 사형 집행을 감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혹하게 겁을 줘 시위대를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이란 전역의 의료진과 인터뷰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시위대를 비밀리에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산탄총 알탄이 박힌 환자들 중 여성에게서 남성과 다른 패턴을 발견했다. 여성에게만 다리, 엉덩이 등에 총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이후 총탄 부위를 관찰했다고 전했다.
10명의 의료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현재 수백명의 이란 젊은이들이 영구적인 피해에 시달릴 수 있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의료진은 이들이 눈에 총상을 입는 일이 가장 흔하다고 밝혔고, 여성일 경우 민감한 부위에 특히 더 많은 공격을 받았다.
중부 이스파한 지방의 한 의사는 “(당국이) 이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남녀를 다른 방식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성기에 총을 맞은 20대 초반의 여성을 치료했는데, 10개의 알갱이가 허벅지 안쪽에 박혀 있었으며 일부는 제거하기 힘들 만큼 생식기 근처에 있었다고 전했다. 질 감염의 위험이 심각해 산부인과에 가 보라고 권했을 정도였다.
의료진이 제공한 사진에는 보안군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발사한 이른바 새총 알갱이가 시위대 몸 전체에 엄청난 상처를 안긴 것으로 나타났다. 수십 개의 작은 샷 자국이 살 깊숙이 박힌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미국 CNN방송이 시위 도중 붙잡힌 여성들이 구치소에서 당국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역시 참상을 보다 못한 병원 관계자 등에 의해 폭로됐다.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은 점점 더 선을 넘고 있다. 이날 이란 사법부가 운영하는 미잔 통신은 반정부 시위 참여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남성 모센 셰카리(23)의 형이 집행됐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대에 대한 첫 사형 집행이다.
사법부는 셰카리가 지난 9월 25일 테헤란의 한 도로를 점거하고 보안군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죄로 지난달 13일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유럽연합(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이란 당국은 사형 판결 및 향후 추가적인 사형 집행을 삼가고, 사형제도 전면 폐지를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이어 “이란도 당사국으로 참여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명시된 의무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호소한다”며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기본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 책임자 메흐무드 아미리 모가담은 “셰카리가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불공정한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 받고 목숨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유죄 판결을 받은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사형 집행은 이란 사법 체계의 비인간성을 드러낸다”고 날을 세웠다.
인권단체는 반정부 시위대 10여명의 사형 집행이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 9개 국가는 이란 내 시위대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자국과 한국,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 칠레, 캐나다, 호주 외무장관 명의로 ‘이란 여성·소녀 지지에 대한 젠더 기반 온라인 괴롭힘·학대에 관한 글로벌 파트너십 행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22세 마흐사 아미니의 비극적인 사망에 따른 전국적이고 지속적인 시위를 이끄는 용기 있는 이란의 여성·소녀들에 대한 극단적 폭력에 주의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9개 국가 외무장관은 “이란 당국은 기술을 사용한 젠더 기반 폭력을 포함해 시위대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계속하며, 심지어 고조해 왔다”며 “여성과 소녀들이 이란 당국의 온라인 괴롭힘과 학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형은 이란 정권이 평화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보여준 가장 최근의 행위”라며 “사람들을 겁주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한 시위가 석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2일 기준 미성년자 64명을 포함해 469명의 시위 참가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했다. 구금된 시위대는 1만8000여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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