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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결혼 줄어도 식장은 ‘예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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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9 01:11:46 수정 : 2022-11-29 0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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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2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앞자리 ‘3’자 마지막으로 쓰게 되어 울적할 줄 알았는데, 최근 신변의 변화로 어서 빨리 새해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다가올 2023년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아서다. 내년 10월, 내 인생에는 없을 일일 것 같았던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내년 10월로 예정된 결혼식에 이제 겨우 준비 초입단계에 있지만, 그리고 그 준비조차 여자친구가 9할 이상을 하고 있음에도 느낀 점이 제법 많다.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결혼의 시작인 식장 예약을 내가 했으니 반반했다고 우겨보련다.

 

느낀 점 하나. 누가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했나. 물론 결혼하는 이들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은 ‘팩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만건 밑으로 내려앉았단다. 분명 나도 ‘N포 세대’를 들먹거리며 2030들이 결혼을 너무 안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기억이 있는데, 최근 두 차례 찾은 웨딩박람회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예비 신랑, 신부들로 그득했다. 

남정훈 사회부 기자

‘네가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갔으니 그런거 아냐?’라고 반문할 사람들에게 변명해보자면, 결혼식장 예약부터 경쟁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문 대학교에 있는 결혼식장 여러 곳 중 여자 친구가 가장 좋다고 말한 곳을 예약하기로 하고,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까지 동원해 2023년 10월 네 번의 토요일 중 괜찮은 시간대 8개를 예약을 동시에 시도해 성공한 날짜와 시간대에 결혼식을 올리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선착순 온라인 예약이 열리고 1초 만에 모두 ‘광탈’. 다행히 차선책으로 찍어놓은 다른 결혼식장 예약에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초장부터 꼬일 뻔 했다.

 

‘예약전쟁’은 결혼식장이 시작이었다. 인기 있는 웨딩촬영 스튜디오나 스냅사진 업체, 영상 촬영업체들은 결혼이 아직 11개월여 남았음에도 꽉꽉 들어차 있었다. 특히 ‘3대장’이니 ‘끝판왕’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곳은 언감생심이었다. 11개월이나 남아서 여유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웨딩박람회에서 만난 플래너들이 “일정이 그리 여유롭진 않으시네요”라는 말을 왜 했는지 알게 됐다. 

 

웨딩 플래너와의 상의 끝에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업체들을 확정하니 왜 기혼자들이 결혼식 두 번 올리기는 싫다는 농담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기껏해야 30분 남짓한 결혼식을 위해 준비할게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그 30분에 온갖 산업들이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웨딩박람회에는 예물, 남성예복, 한복, 가전, 여행사 등 가지각색의 제휴업체들이 달콤한 프로모션으로 예비 부부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절대 흔들리지 말고, 듣기만 해야지’라고 다짐했건만, 혈혈단신으로 오나라 적진으로 들어가 적벽대전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제갈공명의 말솜씨를 능가하는 그들의 혀놀림에 어느덧 계약서에 사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현타’가 오곤 했다. 

 

문득 스드메 업체들이 청담동에 몰려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플래너에게 묻자 명품매장이 즐비한 청담동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덕에 일종의 ‘웨딩 클러스터’가 형성됐단다. 마치 포항에 철강 관련 업체가 몰리는 것처럼. 1990년대만 해도 이대나 아현동 웨딩드레스 거리에 웨딩업체가 몰려있었으나 2000년대초 청담동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독식하게 되면서 웨딩업체들이 이사했단다. 덕분에 내년엔 청담동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생겼다.

 

이번 에세이로 결혼을 빼도박도 못하게 된 김에 지인들께 고합니다. “저, 내년에 결혼합니다. 청첩장 나오면 찾아뵙겠습니다”


남정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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