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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력(冊曆)은 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것으로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책력을 사용했고, 해와 달의 운행을 재어 책력을 만드는 기술인 역술이 중시됐다. 인간의 시간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4년(674년)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하던 대나마 덕복이 역술을 배워 돌아옴에 따라 새 역법(曆法)으로 고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우리 조정에 역법을 보내왔다. ‘고려사절요’의 공민왕 19년(1370년) 기록을 보자. “왕이 법복을 마련해 종묘를 받들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짐이 매우 기뻐해 관복과 악기, 대통력(大統曆)을 주니, 그곳에 도착하거든 받도록 하라.”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성준득이 전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새서(璽書: 옥새를 찍은 문서) 한 구절이다. 원나라 수시력(授時曆)을 바탕으로 만든 명나라 역법인 대통력이 처음 전해진 것이다.

조선이 들어선 뒤에는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을 만들었다. 세종 때 역법과 천문 현상이 들어맞게 하기 위해 대통력법통궤와 수시력을 비교해 오류를 고친 ‘칠정산내편’과 회회력(아라비아 역법)을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교정한 ‘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 이후 역일 계산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효종 4년(1653년)에는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해 24절기와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이 채택됐다.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게 서양 천문학을 배운 서광계 등이 서양 역법을 정리해 ‘숭정역서’를 편찬했는데, 1644년 청나라 세조의 명에 따라 예수회 신부 아담 샬 등이 이를 ‘신법서양역서’로 개편했고 이듬해 시헌력이란 이름으로 시행됐다. ‘시헌’은 마테오 리치의 호(號)다. 시헌력은 고종이 1896년 태양력을 시행한 이후에도 음력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이 생전에 사용한 경자년(1600년) 대통력이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회수됐다. 서애의 손때가 묻은 수택본(手澤本)이다. 여백에는 충무공 이순신 등에 관한 내용도 적혀 있다. 당시 책력이 일상의 삶에 얼마나 밀접한 것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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