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방송, 경기장으로 화면 돌려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겠다.”
21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이란과 잉글랜드 사이의 조별리그 B조 1차전이 열린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이란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국가가 흘러나오자 모두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연대하는 행동이었다. 이날 이란 대표팀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2-6으로 패배했지만, 용기를 낸 이란 선수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에 앞서 국가를 제창하지 않은 이란 선수들에 대해 AFP통신은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란 국영TV는 국가 연주에 침묵하는 선수들의 얼굴을 비추는 대신 경기장 전경으로 화면을 돌렸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여대생인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됐다가 의문사한 뒤 이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란 당국의 강경한 진압으로 현재까지 수백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인권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번 국가 제창 거부와 관련, 이란 대표팀의 알리레자 자한바흐시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기로 하면서 시위대에 연대 표시를 하기로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주장 에산 하지사피도 “우리는 유가족과 함께하며 이들을 지지하고 이들의 마음에 공감한다”며 “우리의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는 싸워야 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쳐 득점해 이란의 용감한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안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응원단도 이날 관중석에서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사망한 여대생 아미니의 나이 22살에 맞춰 잉글랜드전 전반 22분에는 일부 팬들이 아미니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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