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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의동행] 어린 연인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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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2 23:10:33 수정 : 2022-11-22 23: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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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주에 갈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가는 비행기 옆 좌석에 젊은 연인이 자리했다. 젊다기보다는 어리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한 커플이었다. 아직 풋것의 기미도 가시지 않은 둘을 보고 있으려니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 염려에도 그 어린 연인은 서로를 애틋하게 챙겨주며 마냥 행복하고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좋을 때였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있다는 그 충만함으로 순간순간이 가슴 떨리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필시 가족에게는 숨기고 떠나온 비밀한 여행이었겠지만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그 여행은 강렬한 떨림으로 그들의 기억에 저장될 것이다.

작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즘의 역사’라는 책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마술을 닮은 사랑은 기존 질서와 대립적”이며 “사랑할 때 대상은 우주 그 자체”라고. 그러니 그 젊은 연인에게는 당장 상대가 자신의 전부이고,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없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생의 어느 한 시점의 일탈이나 모험은 삶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성과의 교제 역시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계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자세가 바탕한다면 그것처럼 삶을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우리 때는 그러지 못했다. 이성과의 여행은커녕 교류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이성 간의 교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고희를 훌쩍 넘긴 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게 뭐냐고. 놀랍게도 대답은 같았다. 연애요. 연애라고 대답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수줍음과 함께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남녀유별, 그 엄혹했던 시절을 통과해왔으니 살면서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았을 리가 만무하다. 어쨌거나 비행기 안에서 그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대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썼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오지랖 넓게 내 좌석은 창가 쪽이었는데 그들에게 양보도 했다.

그 어린 연인의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얼마 가지 못해 이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곁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삶의 위로자가 돼줄지도 모른다. 이 연애의 결말이 어떤 풍경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아이들이 살아내야 할 삶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점이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동안 위기가 찾아오고 시련도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지혜롭게 그 순간을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설령 이별하더라도 그 상처로 무너지거나 상대를 공격하는 일 없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별이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정말, 요즘 들어 이별과 관련해 들려오는 소리들이 너무 끔찍하다. 이 어린 연인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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