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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고양이들에게 밥 주면서 비로소 사람을 보게 됐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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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3 07:30:00 수정 : 2022-11-22 15: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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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 /2022.11.16/남정탁 기자

“얘!”

 

젊은 시인 황인숙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건물의 좁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던 한 아줌마가 그녀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시장에서 야채를 팔던 여성이었다. 다소 통통한 체격에 얼굴색이 조금 까무잡잡해 보이는 순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너, 시 쓴다며?” 황 시인은 깜짝 놀랐다. 아직 이십대로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하던 그녀에게 40대 야채장사 여성은 그냥 아줌마였다. 억척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시와 연루가 있을 것 같지도 않던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 한켠에서 뭔가 찌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아줌마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노래하는 줄 알았어.”

 

황 시인은 당시 야채장사의 바로 위층에 살면서 주로 책을 읽거나 가끔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 노래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렸다니. 1986년 해방촌 신흥시장 안에 위치한 건물로 들어온 시인은 이때 처음 시장 사람들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의 애경이 엄마를 비롯해 해방촌을 중심으로 시장터 여성들이 떠올랐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강하게 살아내야 하는 시장의 여인들.... 이와 함께 제도권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지적인 독서가로 후암동에서 고양이 밥을 주는 조정환 할머니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3, 4년 전 한편의 시가 태어났다. 시 「장터의 사랑」이었다.

 

“난 불안도 불면도 없어요/ 세상엔/ 미끄러지고 나동그라지고/ 뒤집힌 풍뎅이처럼 자빠져/ 바둥거리는 맛도 있다우// 누군 죽어 지내는 맛도 있다지만/ 나는 그런 맛 몰라// 무식한 건 무서운 거야/ 벽을 문처럼/ 까부수고 나가는 거야// 난 그렇게/ 이겨왔다우”(「장터의 사랑」 전문)

 

중견 시인 황인숙이 장터 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그린 「장터의 사랑」을 비롯해 시 64편을 묶은 아홉 번째 신작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돌아왔다. 시집 『아무 날이나 저녁때』 이후 3년 만이다.

 

38년간 서울 해방촌에 터잡고 살아온 황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해방촌의 아스라한 삶과, 그곳의 다채로운 이웃들과, 선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인위적인 비틀림이나 의미부여 없이 풀어놓는다. 해방촌 일대의 존재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시들을 읽고 있자면, ‘시는 곧 삶이자, 삶이 곧 시’라는 시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황 시인에게 해방촌과 그곳 사람들, 고양이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녀의 문학적 여로는 앞으로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황 시인을 지난 16일 서울 후암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장터의 사랑」은 강렬한 시인데.

 

“장터라는 곳은 치열함이 묻어나는 생활전선이다. 특정인이 있다기보다는 건강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장터의 사람, 제가 보아온 장터 여인을 상정해 쓴 것이다. 신흥시장 속 건물에 살았지만 거의 집 안에만 있거나 시내를 싸돌아다녔기에 시장 사람들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건물 아래 상인들을 봤지만, 그곳 상인들이 오히려 저를 더 보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 시장 아줌마들은 시인인 저에 대해 무슨 창을 하는 여자라고 말았는데, 야채장수 아줌마가 너 시 쓴다며 말할 때 어떤 애틋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집주인도 아래층에서 신발 가게를 했다. 만약 제가 지금 나이거나 지금처럼 사람이 좀 됐으면 저런 분들과 각별히 정을 나눴을 텐데, 그땐 그냥 지나갔다. 당시 양귀자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 히트하고 있을 때였는데, 만약 양귀자 선생이었으면 이 시장 사람들의 삶을 무화시키지 않았을 텐데 그냥 스쳐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표제시 「내 삶의 예쁜 종아리」에는 해방촌에서 사는 시인의 삶 한 자락이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지름길이란 반드시 오르막이라는 슬픈 진리도 함께.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기름길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내 삶의 예쁜 종아리」 전문)

 

황인숙 시인 /2022.11.16/남정탁 기자

―해방촌에 오르막이 제법 많은 것 같다.

 

“산동네이니까 당연히 오르막이 많다. 저는 언덕도 좋아하고, 오르막도 좋아한다. 고양이 밥을 주러 매일 거기를 오르내려야 하는데, 아마 유난히 힘든 날이 있었을 것이다. 다들 밥벌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도 힘들 것이다. 저는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힘든 것도 당연하고 억울하진 않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이다.”

 

황 시인은 누군가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오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냥 인사치례로 답해야 하는지, 아니면 선의와 우정에 찬 질문으로 보고 진지하게 답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시 「나는 잘 지내요」에는 이런 심리가 잘 담겨 있다. “누군가 물을 때면/ 어떻게 사느냐고 물을 때면/ 왜 울컥 짜증이 날까?/ 왜 시를 쓰느냐고 물을 때처럼/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한 선생님께서/ 대답을 가르쳐 주셨는데 번번이 잊어버린다// 어떤 행사장에서 마주친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그래, 어떻게 지내나?’/ ‘내가 어떻게 지내지?’ 열심히 생각하느라 쩔쩔 매는데/ ‘그냥 잘 지낸다고 하면 돼!’/ 급기야 그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시면서/ 답을 알려주셨다/ 나는 달아오르는 얼굴로 ‘아, 네...’/ 몇 년 뒤 다른 행사장에서 그분을 마쳤을 때/ ‘예, 잘 지내요.’/ 웃으면서 얼른 대답 드리자 그분도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잘 지내요/ 틈틈이 삽니다만....”(「나는 잘 지내요」 전문)

 

―마지막의 “나는 잘 지내요 틈틈이 삽니다만”은 무슨 뜻인지.

 

“지금 시를 듣다 보니까, 시집 전체에 나 잘 못 지내요, 하고 엄살과 비명을 지른 거 같아서 창피하다(웃음). 보통 모임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사느냐고 하면 의례적 인사이니까 별 일 없어요, 잘 지내요, 하면 된다. 제가 의례적으로 생각한 분이었다면, 예 잘 지내요, 하고 그냥 지나갔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진지하게 대답하려다가 면박을 당한 것이다. 틈틈이 산다는 말은, 잘 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역설이라기보다 제일 처음 물음에 대한 대답인 거겠죠.”

 

황 시인은 20년 가까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이들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니까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벌레처럼 기어 나오네!’// 정말이지 나는/ 옹알이하는 젖먹이만큼이나/ 욕을 할 줄 몰랐다/ 지금은 할 줄 아는 게/ 욕밖에 없는 것 같다/ 방금도// 동네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고양이 밥그릇이 사라졌다/ 나는 돌아버렸다/ ‘어디서!’/ 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볼 노인 남자 들으라고/ 나는 목청을 높였다/ ‘어디서 고양이 사료보다도 지능이 떨어진 놈이!/ 번번이!’/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지옥에 떨어질 거야!’/ ‘저승길 편하려면 이렇게 살지 마세요!’/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다가온 고양이들이/ 나 때문에 겁먹고 시무룩해졌다/ ‘그래, 그래, 미안, 미안.’// 아, 이 좋은 봄밤/ 라일라 향기 속에서/ 나는 입에 마른 거품 물고 욕으로 목이 메네”(「봄의 욕의 왈츠」 전문)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갈등하는 모습이 리얼하다.

 

“4월말에서 5월 초쯤, 한 노인 할아버지가 고양이 밥그릇을 치워버렸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가까운 곳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사십 분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 고양이 밥그릇이 없어지기도 한다. 밥을 못 먹은 고양이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노인이 들을지 안 들을지 모르지만, 어디서 숨어서 지켜보겠지, 하면서 욕을 했다. 더 심한 일도 많다. 중성화되고 귀 잘린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도 했다. 심한 경우 옆집에서 뻔히 키우는 고양이인데도 약을 놓아서 죽이는 사람도 있다. 혹시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조마조마해 매일 스트레스 상태다. 고양이에 밥을 줄 때 누가 순한 말을 시키는 것도 싫고, 보는 것도 싫다.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저 같은 지경이다.(왜 그런지) 맨날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시비 걸리기 일쑤고, 경찰도 출동할 때도 있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게 못마땅하더라도 보통은 눈살이나 찌푸리고 마는데, 일단 대체로 할 일이 없거나, 이단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 시비를 건다. 심지어 마을을 위한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있다. 사람들만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데, 아무 쓸모없는 생명들이 몰려오게 하느냐고. 고양이에게 가장 적대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육칠십 대 남자들이다.”

 

아직 인본주의가 강하고 생명애 사상이 충만한 사회가 아닌 탓에, 고양이 밥 주기를 둘러싼 소동은 시시 때때로 곳곳에서 벌어진다. 특히 난닝구 바람으로 골목으로 뛰쳐나오는 노인들이 많은 여름날에는 그 절정에 달하는데. “어제도 그제도/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그쪽 하늘 향해 미친 듯 소리 질렀네/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루저! 루저! 루저! 루저!/ 루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구!’/ 내 서슬에/ 지나가던 청년 흠집 쳐다보고/ 노인은 꼬리를 감췄네/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칠십 줄에 가족 없이, 에어컨도 없이/ 하숙방에 사는 사람한테/ 아, 내가, 내 입에서!//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 열대의 밤”(「슬픈 열대」 전문)

 

-서로 상처를 주는 모습이 안타깝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을 놓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참 서글픈 풍경이다.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엄청 힘들다. 결국 고양이 밥을 주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게 관건이다. 왜냐하면 싫으면 싫은 대로 무심하면 무심한 대로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을 보면 잔소리를 하고 시작하고, 그럼에도 밥을 주면 그 다음부터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겨울에는 여름처럼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적고 벌레도 없어서 용이한 측면이 있다. 고양이에겐 힘들고, 물이 꽁꽁 어는 게 힘들지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 화가 많아지고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모른다. 제 스스로 섬뜩하고,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시집에는 이밖에도 해방촌 주민이나 그 이웃들의 모습도 수채화처럼 담겨 있다. 해방촌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난 거무튀튀한 외국인 노동자들(「어둠의 빛깔」)도, 막내딸을 잃고 혼자 지내는 친구 어머니(「어떤 저녁」)도, 치매 판정 받은 여성(「하얀 복도」)도.... “쉽게 보낸 시절이/ 달리 떠오르지 않지만/ 태어나서 가장 힘든 것 같은/ 시간이었다/ 질척 어둠을 휘적휘적 걸으며/ 내뱉었다/ ‘비참할 정도로 피곤하구나!’/ 비명을 지르면/ 좀 낫기도 해서// 불행감에 격해져/ 쿵쾅쿵쾅/ 지하철 개차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 플랫폼을/ 사납게 걷던 내 걸음이/ 덜컥, 제동 걸렸다/ 나는 감히 바로 보지도 못하고/ 천천히/ 그 앞을 지나갔다// 서남아 사람인 듯 거무튀튀한/ 오십줄 사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긴 의자에 혼자/ 짙고 짙은 암갈색/ 환영처럼 앉아 있었다/ 밤늦은 시간인데/ 전철도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는 얼굴로//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는 악몽,/ 같은 적막에 쌓여/ 나보다 더 어두웠던/ 노동자인 듯한 그 이방인”(「어둠의 빛깔」 전문)

 

황인숙 시인 /2022.11.16/남정탁 기자

―외국인 노동자 모습이 을씨년스러운데.

 

“5, 6년 전쯤 지하철 플랫폼에서 본 장면일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온 제3세계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심각하게 열악하다.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을 텐데. 해방촌에도 외국인들이 많다. 옛날에는 백인들의 경우 비교적 잘 살았지만, 요즈음 백인 가족도 반 지하 같은 곳에서 살고 있더라.”

 

학창 시절 장래 희망을 기록하는 란에 ‘문호’라고 적어 내긴 했지만, 학생 황인숙은 자신이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백일장에 나가지도, 당선된 적도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로 일기를 썼을 뿐이었다. 물론 마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왜 좋아하는지 생각할 것도 없이 책 읽기를 좋아하긴 했다. 특히 시보다 소설이 좋았다. 시도 좋긴 했지만, 소설보다 멀고 지루했다.

 

“이것 어때?” 스무 살 무렵, 황인숙은 뭔가를 쓰고 싶었다. 시인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혼자 시를 열 편 정도 썼다. 짧아서 쓴 것 같았다고, 그녀는 무심한 듯 회고했다. 그래도 잘 쓴 것 같아서 친구에게 자신의 시를 보여줬다. 자신이 썼다고 말하지 않은 채.

 

“키 큰 남자가 쓴 것 같은데.” 그녀는 친구의 반응이 재미있어 왠지 몰라도 기분이 좋고 흐뭇했다. 물론 그렇다고 계속 시를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때 쓴 시를 바탕으로 몇 년 후 등단하게 된다. 시인 황인숙의 문학 원점이었다.

 

몇 년 뒤인 1982년, 황인숙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인을 생각하고 간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진학했을 뿐이었다. 그는 이때 자신이 스무 살 때 썼던 시 열 편을 시인 정현종 교수에게 보여줬다가 극찬을 받았고, 오규원 시인에게서 본격적으로 시를 배웠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난 황인숙은 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1988), 『슬픔이 나를 깨운다』 (1990),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1994),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 『자명한 산책』 (2003), 『리스본행 야간열차』 (2007),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2016), 『아무 날이나 저녁때』(2019)를, 소설 『지붕 위의 사람들』, 『도둑괭이 공주』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형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 세계를 조금 소개해 달라.

 

“시 세계랄 게 따로 없다. 이전에는 게을러서 그랬고, 이후 15, 6년 동안은 24시간 가운데 절반을 고양이의 시간으로 써서 시에 많은 공력을 들일 수 없었다. 탐미적인 시 이런 것을 쓰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시만 일기 쓰는 식으로 써왔다. ‘삶 그대로의 시’, ‘삶이 시인 시’를 아무런 창의력이나 문학적 아우라 없이 썼다. ‘삶이 곧 시’라는 게 제 시 세계인 것 같다.”

 

―시 쓰기의 전략이나 원칙, 방법이 있다면.

 

“저에겐 메모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뭔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곤 했고, 신문지 같은 있는 종이에 닥치는 대로 메모했다. 언젠가부터 에너지도 없어서 메모를 잘 안 하게 됐다. 지금도 글감이 떨어지면, 너저분한 메모 더미를 뒤적거리곤 한다. 메모를 시드 머니 삼아서 쓴다. 지금도 하시라도 메모할 준비를 하고 다니자, 라는 마음은 있다.”

 

―이례적으로 소설을 두 편이나 썼다.

 

“돈 때문에 덜컥 계약부터 하면서 쓰게 됐다. 『지붕 위의 사람들』은 짧기도 하고 재미가 있어서 잘 써졌지만, 『도둑괭이 공주』는 끝말잇기 하듯 꾸역꾸역 이어나갔던 것 같다. 소설 쓰기가 쉽지 않구나 생각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 쓰고 싶다.”

 

1986년, 황 시인은 함께 살던 언니가 미국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태원 하얏트호텔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면서 해방촌 생활을 시작했다. 해방촌은 남산타워 남쪽과 용산고 동쪽 사이의 남산 밑 언덕에 해방 후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 더구나 2006, 7년쯤부터는 해방촌과 인근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들의 수호성인’, ‘캣테이커’(그는 ‘캣맘’이 경멸적으로 쓰이고 있으니 ‘캣테이커’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가 됐다.

 

―무슨 계기로 길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것인지.

 

“원래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는데, 해방촌 안에서 두 번째 이사를 한 뒤 집에 고양이를 길렀다. 그런데 고양이를 기르게 되니 다른 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오더라. 새로 이사를 간 집에서 골목이 보였는데, 골목에서 고양이가 자주 보였다. 2006, 2007년 즈음, 집 앞 골목의 한 군데에서 처음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다가 점점 늘어나게 됐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전에는 해방촌에 누가 사는지 몰랐지만,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낯을 익히고 말도 섞게 되게 됐다. 만약 제가 길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면, 어떤 시인이 됐을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경제적 하층임에도 가난한 노숙인이나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이도 제법 있고, 오랫동안 터줏대감처럼 밥을 주고 있어서 해방촌 사람들도 순해졌다.”

 

‘삶이 곧 시’가 되고, ‘시가 곧 삶’ 자체인, 그래서 “천상 시인”(나희덕 시인)인 황인숙의 하루 일정은 고양이 밥 주는 시간을 중심으로 빙빙 돌아간다. 그러니까 오후 6, 7시부터 시작해 새벽 3시까지 해방촌 일대 곳곳을 돌며 고양이 밥을 주는 것에 우선적으로 열과 성을 다한다. 그 나머지 시간에 비로소 간헐적으로 메모를 하거나, 시를 쓰거나, 잠을 자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그리하여 처음 한 곳에서 시작한 고양이 밥집은 이제 서른 군데를 훌쩍 넘어선 반면, 날로 줄어든 수면 시간 탓에 그녀는 늘 졸린 가수면의 포로가 됐다.

 

만약 어느 저녁 해방촌 일대에서 조용조용 고양이 밥을 주는 그녀를 보거든 생명 사랑의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 모르는 척 해주시길. 혹여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놓고 악다구니가 벌어지더라도, 적나라한 ‘욕의 왈츠’를 추더라도 시의 삶이라고 넓게 혜량해 주시길. 그리하여, 이 가난한 ‘고양이들의 수호성인’이 ‘슬픈 열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고, 마침내 다음 세상에선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길 함께 소망해주시길....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좇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부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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