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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음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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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1 23:01:39 수정 : 2022-11-21 23: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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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음악가 상반된 삶 통해 예술의 진정성 질문
음악은 천상의 소리… 권력에 복속 안돼

“자네는 가볍게 활을 놀리고 잘도 퉁기지. 하지만 난 음악을 듣지 못했네. 자네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반주는 할 수 있겠지. 벌이는 할 걸세. 음악에 둘러싸여 있겠지만, 그러나 음악가는 아니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예술의 본질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생트 콜롱브와 그 제자 마랭 마레의 이야기이다. 비올라 다 감바(비올)는 당대에 널리 쓰인 저음 현악기로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란 뜻이다. 작품은 두 사람의 상반된 삶을 통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질문한다.

콜롱브는 아내를 잃은 후 뽕나무 위에 오두막을 짓고 비올 연주에 전념하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무겁고 애달픈 마음을 표현하려고 여섯 줄짜리 비올을 개량해 일곱 줄로 만들고 연주기법을 개발하는 등 음악에만 몰두한다. 그에게 돈벌이나 출세를 위한 음악은 예술이 아니다. 왕이 궁정으로 초대하자, 콜롱브는 단호히 거절한다. “난 폐하께서 주시겠다는 황금보다 내 손에 드리우는 이 햇살이 더 좋소. 왕의 바이올린보다 내 암탉들이 더 좋소.” 예술과 권력, 음악과 세속적 성공은 그에게 공존할 수 없다.

콜롱브는 악보 출판도 거부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똑같이 음악도 연주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즉흥의 표현으로 여긴다. 그에게 음악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을 찢어서 조금씩 내놓으면서 “운명을 완성하는 일”이다. 그의 음악은 탈물질적, 탈지상적으로, 죽음의 강을 넘어 아내의 영혼에 닿으려는 심정의 표현이다.

구두장이 아들로 태어난 마랭 마레에게 음악은 곧 출세이다. 변성기 때 목소리가 망가져 성가대에서 쫓겨난 그는 콜롱브를 찾아가 비올 연주를 알려달라고 애원한다. 재능과 기교를 갖춘 그에게 음악은 권력을 홀리는 페로몬이다. 한눈에 그에게 반한 딸들의 애원 탓에 콜롱브는 억지로 마레를 제자로 들인다.

콜롱브는 마레에게 음악의 본질은 악보나 기교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고 이를 소리로 표현하는 것임을 알려주려 한다. “바람이 휙휙 소리를 냈다. ‘들리나!’ 스승이 외쳤다. ‘아리아가 저음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그러나 마레에게 연주를 배워 하루빨리 궁정으로 복귀하고픈 마음뿐이다. 마레는 왕이 부르자 곧장 궁정으로 찾아가 연주를 들려준다. 마레에게 연주는 갖바치로 살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현이요, 연인을 배신해서라도 얻어야 할 권력의 통로이다.

파탄에 이른 두 사람은 노년에 들어 회한에 사로잡힌다. 콜롱브는 음악을 전할 제자를 두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중이고, 마레 역시 스승의 아름다운 음악을 다 못 배운 아쉬움에 밤이면 몰래 그를 찾는다. 어느 날 마레의 진정한 마음을 확인한 콜롱브는 그를 용서한 후 그에게 ‘첫 수업’을 베푼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음악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지.”

음악은 왕을 위해, 신을 위해, 부를 위해, 명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가 멈춘 곳, 물질이 가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린다. 음악은 지상에서 들을 수 있는 천상의 소리다. 오늘날 예술을 돈과 권력에 복속하려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러나 예술은 늘 그 바깥에서 우리를 찾아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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